신라의 팔관회와 고려의 팔관회는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신라시대에 시작된 팔관회는 그 명맥이 이어져 고려시대에도 계속되어 조선시대에 폐지가 도었는데 신라시대의 팔관회가 고려시대로 오면서 어떻게 변화했나요?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팔관회의 성격
팔관회란 불교의 계율인 팔계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불사의식(佛事儀式)이다. 즉, 근본 5계인 불살생(不殺生) · 불투도(不偸盜) · 불망어(不妄語) · 불음주(不飮酒)에다 부좌고대광상(不坐高大廣床) · 부착화만영락 · 불습가무희악(不習歌舞戱樂)을 지켜 행하려는 종교적인 의식이며, 윤리적 덕목으로 삼아야 할 것을 매월 7일 · 15일에 포살(布薩) · 설경(說經)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인 행사가 신라에서는 중국의 양무제(재위 502-549)때에 이룩된 무차대회(無遮大會)의 형식을 넘어서 전몰자의 위령제로 변용되게 되었다.
고려 팔관회의 성격
고려 태조 왕건(王建)도 신라의 전례를 답습하여 매년 11월에 팔관회를 시설하였다. 이 법회가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일률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나, 성대한 국가적 행사로 거행되었다.고려 팔관회도 신라나 후삼국의 영향을 받아 호국사상이라든가 미륵신앙 등의 고대적 종교제례(宗敎祭禮) 형식이 가미되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의 팔관회는 화랑에 속한 승려가 중심이 되어 이끌었다고 합니다. 행사장에는 큰 무대를 만들었고, 화랑과 낭도들로 구성된 악대가 음악을 연주했고 배에 용과 봉황, 코끼리, 말이 타고 있는 모습으로 꾸민 수레를 중심으로 화려한 춤과 음악, 곡예 등 다양한 공연이 펼쳤습니다. 제사와 불교 의식이 결합된 형태 였습니다.
고려에도 그대로 이어졌는데 약간 틀린점은 팔관회가 불교 의식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전부터 이어온 무속 신앙의 여러 신령들을 함께 모시는 나라의 중요 행사로 그 성격이 약간 변모 한 것 입니다.팔관회는 일 년이 끝나갈 무렵 개경과 서경(평양)에서 열렸습니다 팔관회가 열리면 국왕과 중앙 관리뿐만 아니라 지방의 여러 사람들도 개경에 올라와 참석했는데 여진족 추장과 탐라의 대표, 송 상인과 아라비아 상인도 참석해 축하 편지와 선물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