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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가오리188
즐거운가오리18823.05.12

1905년에 화폐정리사업을 한 사회적 배경과 주요 내용이 궁금합니다

대한제국은 은본위제에서 금본위제로 변경하려고 했는데 실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대한제국이 화폐정리사업을 추진했던 사회적 배경과 화폐정리사업의 주요내용이 어떤 것들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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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폐정리사업 일본 제국의 주도 하에 대한제국에서 시행한 화폐개혁입니다.

    조선 화폐의 뿌리를 뽑아버리고 일본 화폐를 조선 사회 곳곳에 유통시켜서 경제적으로 침투를 쉽게 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12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폐정리사업은 1904년부터 시작된 구화폐의 정리사업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한일간의 통상무역은 급격히 진전되었고 무역결제수단으로 일본화폐가 사용되어 일본화폐의 한국 진출이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근대적 화폐제도는 많은 불편과 손실을 초래했고 일본도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 확보를 위해 한국에 근대화폐가 통용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열강의 이해관계가 서로 달라 은본위 화폐제 도입 등의 노력은 번번이 무산되었다. 결국 1904년 일본이 한반도에 대한 배타적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근대화폐제도 확립을 위한 화폐정리사업이 추진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배과사전 화폐정리사업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897년(고종 34) 일본이 금 본위 화폐 제도를 수립한 이후, 대한제국은 1898년 한러은행을 설립하여 금 본위 화폐의 발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로 한러은행이 폐점되면서 이 계획은 무산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원인으로 국내 은화의 부족 현상이 일어나고, 정부가 이를 대신하여 백동화를 대량 발행하면서 백동화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또한 국제적으로 주변 국가들이 금 본위제로 전환하고 그에 따라 국제 금과 은의 교환 가치가 크게 벌어지면서 대외 환율도 대단히 불안해졌습니다. 이에 대한제국은 1901년 한국 최초로 금 본위제 화폐 제도를 규정한 법령을 선포했습니다.

    금 2푼의 가치를 1환으로 규정하고, 금화 20환, 10환, 5환 화폐를 본위화로, 기존에 유통되던 은화, 백동화, 적동화를 보조화로 규정했습니다. 화폐 규칙을 변경하여 50전을 반환(半圜)으로 100전을 1환으로 칭했습니다. 이에 따라 종래 5냥 은화는 1원, 1냥 은화는 20전, 2전 5푼(엽전 25개)의 백동화는 5전, 5전 적동화는 1전으로 환산되었습니다. 또한 1푼 황동화와 엽전의 유통을 허가했으며, 금을 수입하여 화폐를 주조하는 자에 대해 정부가 허락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화폐 조례는 국제적으로 금과 은의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환율의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방방법이습니다. 그러나 지금 가치가 다른 은화와 동화를 계속 유통시키도록 한 규정은 국내 화폐 사이에 환율 문제를 발생시켜 혼란을 야기했습니다. 또 화폐 주조를 민간에게 허용 한 규정은 화폐에 대한 국가의 일원적 관리 체계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화폐 조례 선포 이후 금 본위 화폐가 유통되지 못하면서 사실상 이 법령은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이로 인해 백동화 환율이 급등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화폐 조례는 1904년 일본인 재정고문에 의해 다시 선포되었고, 화폐 정리 실시의 근거 법령이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5년 당시 재정고문 메가다가 주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금융을 지배하고자 추진한 사업입니다.

    1904년 8월 제1차 한일협약으로 부임한 일본인 재정 고문 케가타 다네타로는 우리나라 화폐제도를 일본과 같게 하려 화폐정리사업을 실시해 우리나라 상공업자들에게 큰 타격을 안겼습니다.

    일제의 화폐정리 사업에 의해 화폐 교환이 이루어지던 1905년 당시 한국인은 상평통보와 백동화를 사용했는데 백동화는 갑오개혁 이후에 사용되던 화폐로 일제는 백동화릐 화폐가치가 일정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교환에 큰 불이익을 주었습니다.

    이제 따르면 백동화를 질에 따라 갑, 을, 병으로 나눈 후 병종은 교환에서 제외, 그런데 한국 상인이 소유한 백동화의 상당수는 을종이나 병종으로 판정받았고 소액을 가진 농민은 교환하기도 어려웠으므로 한국인들은 앉은 자리에서 막대한 화폐 자산을 상실당하였으나 이러한 정보를 미리 알고있던 일본 상인들은 병종 백동화를 이용해 물건을 구입함으로 부당이익을 챙기는 경우가 많았고 이때 경제적 어려움에 빠졌던 많은 회사들이 일본인에게 넘어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