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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08.31

왜구라는 명칭이 붙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동북아의 해적을 왜구라고 불렀는데 이 왜구의 구성인물들은 왜인뿐아니라 당대의 한반도인이나 중국인이 주류일때도 있었다고하는데 왜구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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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7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31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구(倭寇, 일본어: 倭寇, 영어: Wakou, Japanese dwarf pirates)는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대륙의 연안부나 일부 내륙 지역을 약탈하고 밀무역을 행하던 해적집단을 가리킵니다.

    왜구의 어원은 다음과 같습니다.

    왜구라는 명칭은 일본인을 뜻하는 '왜'와 무리지어 떼거리로 활동하는 도적을 뜻하는 '구'가 결합된 단어입니다.

    본래의 뜻은 '일본인이 떼지어 도적질을 하다'라는 의미로, '구'자가 동사로 쓰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왜구’ 자체가 ‘일본 해적’이란 뜻을 가진 말로 명사화 되었습니다. 왜구라는 한자표현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고구려 광개토태왕비문(414년)의 ‘왜구신라’란 표현입니다.

    이후 고려사에도 고종10년(1223년) ‘왜가 김해를 침략했다’는 ‘왜구금주’라는 표현이 등장한후 자주 쓰인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박남근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나라(倭)의 도적(寇).

    왜구의 '왜(倭)'는 왜나라를 뜻하는데 옛날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는 일본을 '왜'라고 불렀어요. 왜구는 바다를 통해 우리나라에 쳐들어와 사람을 해치고 곡식과 물건을 빼앗아가던 해적을 말합니다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이 한자로 왜입니다. 그리고 구는 "도적 구"를 사용합니다.

    간단히 일본 도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구란 글자 그대로 풀면 왜(倭)가 도둑질한다는 뜻이지만 고려말 이래 그들의 약탈 행위가 잦아지면서 왜인들의 해적 행위를 표현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구는 전근대에 활동했던 일본을 근거지로 둔 해적집단을 말합니다. 이들은 바다를 따라 가까운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동남아시아 등지에 침입해 약탈을 일삼았으며 센코쿠시대에는 다이묘와 관계를 맺고 사략해적이나 일종의 수군으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해적활동을 하게 된 원인은 농사지을 땅은 비좁은데 도래인들의 폭발적인 증가로 노략질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왜구라는 단어는 광개토대왕비 비문에 왜구대궤(왜구를 크게 궤멸시켰다)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구(倭寇)는 고려말, 조선초에 가장 심했고, 특히 고려 말 약 40년간은 피해가 커서 고려 멸망의 한 요인이 되었다. 왜적의 침입은 삼국시대에도 빈번하였으며 그 피해도 적지 않았다. 왜구는 ‘왜가 도둑질한다’는 뜻이지만, 고려말 이래 그들의 약탈 행위가 잦아지면서 왜인들의 해적 행위를 표현하는 명사가 되었다. 왜구는 남북조 혼란기의 남조 세력권에 있던 규슈〔九州〕일대의 일본인들로서, 주요 근거지는 쓰시마〔對馬〕·마쓰우라〔松浦〕·이키〔壹岐〕등 지역이었다. 그러나 일본인 학자 중에는 왜구가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으로 구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4세기 중엽 이후 왜구가 크게 세력을 키워 한반도는 물론 중국 연해안까지 침략하게 된 것은 동아시아 정세 변화와 이와 관련된 일본 국내의 정세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14세기 중엽에 들어 원이 쇠퇴하게 되자, 원의 일본침입 이후 전제화되어 있던 일본은 남북조의 내란기에 접어들게 되는데, 남조 세력권에 있던 일부 지방세력들이 해적화하여 한반도와 중국 연해안을 침략하였다. 일본 사회 내부의 모순이 국내에서 통제되지 못하고 국외로 공격성을 띠게 된 것이다. 14세기 중엽에 이르러 일본에서 해적이 크게 발생한 원인 중 하나는 동아시아의 정세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중국 대륙에서는 몽골족의 원이 쇠퇴하고 1367년에 한족왕조인 명이 건국하였으나, 북원과의 패권 경쟁으로 왜구 문제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고려는 원간섭기에 원의 간섭과 감시로 자체의 군사력을 갖추기가 어려워 국방이 약화되어 있었다. 1356년 공민왕이 반원개혁을 단행하여 원의 간섭에서 벗어났지만, 약화된 군사력을 일거에 회복할 수는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다시 고려에 압력을 가하려는 북원과 중국대륙의 신흥국인 명과의 외교관계 긴장으로 왜구 침입에 군사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구는 '왜가 도둑질한다'는 뜻이지만,

    고려말 이래 그들의 약탈 행위가

    잦아지면서 왜인들의 해적 행위를

    표현하는 명사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