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와 조선후기의 양반비율은 각각 어느정도 였나요?
조선후기로 오면서 양반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면 조선초기와 조선후기의 양반비율은 각각 어느정도 였나요? 그리고 조선후기에 양반이 급격하게 증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조선 건국 당시 7%에 불과했던 양반 비율이 조선 후기에 70%까지 늘어났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에 족보가 없는 상민들은 군역과 부역을 지는 등 사회적인 차별이 심하였습니다. 족보는 지배층의 특권을 보증해주는 문서로서 쓰였기 때문에 양반이 되려고 몰락양반의 족보를 사거나, 위·변조가 성행하였다고 합니다.
양반 비율 변화에 대한 한 기록을 보면
“1663년 서울 마포, 서대문구 일대 681가구 총인구 2,374명의 신분 분석한 결과 양반은 220명(9.27%)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상놈은 334명으로 14.7%이다. 나머지 76.7%는 천민이었다. 그러던 것이 철종(1858)에 이르러 양반 70%, 상민 28%, 노비 2% 비율로 뒤바뀐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신분상승을 꾀한 결과이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7% 정도였고 조선 후기 70%가 양반이었습니다.
양반이 급증한 이유는 양인이었던 사람들이 군공이나 납속 등의 방법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뤘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학의 증가로, 양반사족 집안에서 유학을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서얼자들을 포함한 일부 중인층이 스스로를 유학이라 칭하고 군대의 일종은 충의위가 유학으로 직역 이동했으며 신분 질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양인이나 노비들 중 스스로를 유학이라 꾸며 거짓 호칭을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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