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제가 책을 불태우라는 명을 내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진시황제가 책을 불태우라는 명을 내렸다고 하던데
불태우라는 명을 따르지 않았다 적발되면 얼굴에 문신을 넣는 형벌에 처해졌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백성들에게
두사람 이상이 책을 읽고 과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사형에 처한다, 그리고 옛날 기록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사람이 있다면 삼족을 멸한다고 했던 기록이 있던데
진시황제가 책을 불태우라 명을 내리고
백성들에게 책의 내용을 언급하지 못하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분서갱유에 대해 물어보신 것 같습니다,
분서갱유는 진시황 즉위 34년에 사상통제 정책의 일환으로 학자들의 저치 비평을 금하기 위해 민간에서 가지고 있던
의약.복서.농업에 관한 책만을 제외하고 모든 서적을 모아서 불사르고 이듬에 함양에서 수 백 사람의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사건 입니다.
이 사건의 개요는 당시의 유학자들이 주의 봉건제를 찬양하고 신화에는 정치를 비난하자 사상 통제의 필요성을 느끼던 시황제는 승상 이사의 건의를 받아들여서 서적을 불사들고 여러 학자를 체포하여 생매장 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진시황은 엄격한 상과 벌을 바탕으로 한 법가적 통치로 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인 진을 엄격한 법치로 운영하려 하였습니다. 이에 사상적 통일을 위해 분서갱유를 일으킨 것입니다. 분서는 법가사상 이외의 책을 불태우는 것을 말하고 갱유는 유가의 선비를 묻어버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은 단명하는데 너무 엄격한 법가를 채택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아 한나라는 법가를 기본으로 하되 유가를 통치이념으로 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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