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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좀합시다
그만좀합시다23.07.30

궁예가 신라왕실후손이라는것이 사실인가요?

궁예의 출신이 신라의 왕자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가요? 아니면 지배자로의 정당성을 가지기 위해서 꾸며낸 이야기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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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7.3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 궁예전에도 우리가 흔히 아는 '왕의 아들이었으나 버려졌다'는 모호한 기록만이 전해질 뿐이며, 궁예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신라 각 왕의 본기에는 궁예의 출생에 대해 일말의 기록조차 적혀있지 않다고합니다. 따라서 궁예를 신라 왕족으로 여기는 기록의 정황 증거조차 제대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궁예가 신라 왕족 출신인지에 대해서 알 수없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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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궁예는 신라 제47대 헌인왕과 이름이 알려지지않은 후궁 사이에서 낳았다는 설과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는 설 그리고 45대 신무왕의 숨겨논 아들이라는 설이 있는것으로 보아 신라의 진골임은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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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弓裔)는 신라 사람으로, 성은 김씨이다. 아버지는 제47대 헌안왕 의정(誼靖)이고, 어머니는 헌안왕의 후궁이었는데 그 성명이 전하지 않는다. 혹은 48대 경문왕 응렴(膺廉)의 아들이라고 한다.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그때 지붕 위에 흰 빛이 마치 긴 무지개처럼 위로 하늘에 닿아 있었다.


    일관(日官)이 왕에게 아뢰었다.


    “이 아이는 중오일(重午日)에 태어났고, 나면서부터 이가 있으며, 게다가 세찬 빛무리가 범상치 않았으니 장래 나라에 이롭지 못할까 염려되온바, 기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왕은 궁중의 사자를 시켜 그 집에 가서 아이를 죽이게 하였다. 사자가 포대기 속에서 아이를 꺼내 다락 아래로 던졌는데, 젖먹이는 종이 몰래 받다 잘못하여 손으로 눈을 찔러 한쪽 눈이 멀게 되었다. 그 종은 아이를 안고 달아나 숨어서 고생스럽게 길렀다. 나이 10여 세가 되도록 장난을 그치지 않자 그 종이 그에게 일러 말하였다.


    “네가 태어나 나라에서 버림을 받았던 것을 내가 차마 지나칠 수 없어 몰래 길러 오늘에 이르렀는데, 너의 미친 짓이 이와 같으니 반드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와 너는 함께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니 이를 어찌 해야겠느냐?”


    궁예가 울면서 말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제가 떠나가서 어머니의 근심이 되지 않겠습니다.”

    이리하여 곧바로 세달사(世達寺)로 가니, 바로 지금의 흥교사(興敎寺)이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스스로 선종(善宗)이라 하였다. 장성하매 승려의 계율에 구애받지 않고 종잡을 수 없었으며 담력이 있었다. 한번은 재(齋)를 올리러 가는 길에 까마귀가 웬 물건을 물고 와서 그의 바리때에 떨어뜨렸다. 궁예가 그것을 보니 상아 조각에 ‘왕(王)’자가 쓰여 있는지라 비밀에 부쳐 말하지 않고 자못 자부심을 가졌다.


    신라 말기에 정치가 황폐하고 백성이 흩어져 왕기(王畿) 밖의 주‧현들 가운데 등을 돌리거나 붙좇는 경우가 반반이었으며, 멀고 가까이에서 뭇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개미떼처럼 모여들었다. 선종이 이를 보고 이 어지러운 때를 타고 무리를 끌어 모으면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진성왕 즉위 5년, 즉 대순(大順) 2년 신해(891)에 죽주(竹州)의 도적 우두머리 기훤(箕萱)에게 투신하였다. 기훤이 오만무례하자 선종은 마음이 답답하여 안정하지 못하고 몰래 기훤의 휘하인 원회(元會)‧신훤(申煊) 등과 결탁해 벗을 삼았다가, 경복(景福) 원년 임자(892)에 북원(北原)의 적도 양길(梁吉)에게 투신하였다. 양길은 그를 좋게 대우하고 일을 맡겼으며, 드디어 군사를 나누어주어 그로 하여금 동쪽으로 땅을 경략하게 하였다. 이에 치악산(雉岳山) 석남사(石南寺)에 나와 묵으면서 주천(酒泉)‧나성(奈城)‧울오(鬱烏)‧어진(御珍) 등 현을 습격해 모두 항복받았다.

    출처 : 삼국사기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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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왕으로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며,

    신라 시대 왕가 서족 출신의 승려이자

    신라 헌안왕 또는 경문왕과 후궁 사이에 태어난 서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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