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엇을 보시고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전기에도 공민왕은 비판받는 모습이 종종 나옵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불교 숭상, 신돈 등용 따위의 것입니다. 또 세조 시기에 국방에 소홀하여 홍건적의 침입을 맞아 도피하였음을 비웃는 내용이 나오기도 합니다. 연산군일기에는 연산군과 공민왕을 비교하며 연산군은 밝고 사리깊은 반면, 공민왕은 혼란했다고 나옵니다. 명종실록에는 공민왕을 "혼주(昏主)", 즉 어리석은 임금이라 표현했습니다.
조선 초기에 고대부터 고려까지의 역사를 편집한 «동국통감»에서도 공민왕의 평은 좋지 않습니다. 여기서 공민왕은 처음엔 명성이 있었으나 성품이 사납고 뜨내기들이나 데려다 써서 결국 역적 신돈이 활개쳤고, 왕비가 죽은 뒤엔 사람을 마구 죽이는 등 종사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나옵니다.
즉, 조선의 입장에서 공민왕은 고려 멸망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한 인물이어야 했기에 전반적으로 평이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