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결투문화가 자리잡지 못한 이유는 삼국 시대 이후 대체로 중앙집권적 왕권과 공식 관료제 중심의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신분제, 관료제가 엄격했고, 분쟁이나 논쟁은 공식적으로 율령에 의해 사법, 행정적으로 처리했기 때문입니다. 즉 공권력 외에 명예, 재산 문제를 사적인 결투에 의해 해결하는 것은 위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고려, 조선으로 갈수록 유교적 질서가 강화되어 개인적 명예나 무역 과시가 공동체의 화합과 예, 질서에 어긋난다고 여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