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유학은 진시황이 자신에게 반대하는 유학자를 생매장 시키고 유교경전을 불사르는 분서갱유를 저지릅니다. 진나라 이전의 유학은 공자 맹자 순자의 선진유학으로 불리고 한당시대에는 경서를 복원하는 경학과 훈고학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본격적인 학문체계는 송나라의 성리학입니다. 우주와 사물의 본체론과 심성론을 주장하고 이기론을 주장하였습니다. 조선은 고려 말에 안향과 백이정에 의해 성리학이 들여오게 되었고 여말선초의 신진 사대부를 형성하게 됩니다. 조선의 건국이념은 성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특히 16세기 사림파들에 의한 성리학적 질서는 절대적 신념체계가 되어 형식화되고 의식화되었습니다. 중국 성리학과 다르게 조선 성리학은 우주론과 본체론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인간의 심성론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라는 특출한 성리학자를 배출하였지만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탁상공론 공리공론으로 비판받아 실학이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