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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마더77
망고마더7723.12.19

기아자동차에 역사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기아자동차에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끼고 좋아 하는데 문득 기아자동차에 탄생부터 역사까지 알고 싶어요 그리고 역대 가장 많이 팔린 기아자동차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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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4년 12월 11일에 학산 김철호에 의해 '경성정공'으로 설립되어 초기에 자전거 부품을 만들었으나, 1952년 3월 국내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를 출시(다들 아는 그 삼천리자전거의 기원이 된다.)하고 1952년 부산공장 신설 후 기아산업(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1957년 시흥공장 설립 후 1961년에 일본 혼다와 합작해 2륜 오토바이를 처음 생산했고, 1962년 도요공업의 모델을 들여와 356cc짜리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면서 '기아마스타' 모델을 쓰며 자동차 사업에도 손을 뻗었다. 1970년 4륜 화물차 복서 및 타이탄을 출시했다. 1973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에 종합자동차공장을 세우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으나, 그해 김철호 사장이 숨지자 장남 김상문이 후계자로 나서며 1974년에 국산 FR 승용차 브리사를 제작하였다. 브리사는 당시 국산 승용차 시장 1위를 차지하는 최강자의 위치에 있었을 정도로 막강[32]했던 차량이다.

    1975년에는 이륜자동차 부문을 떼내 '기아기연'으로 출범시켰고, 1976년에는 동국제강으로부터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하고 1979년 자전거사업부를 '삼천리자공'으로 독립시켰다. 1981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산업합리화)로 인해 정부로부터 '중소형화물차 및 버스 전문생산업체'로 지정받아 승용차 생산이 금지되면서 경영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같은 해 10월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선 이후 마쓰다의 소형승합차 봉고를 라이선스 생산해서 대성공을 이루는 한편, 1982년부터 원가절감운동 'RCD-22' 작전을 밀어붙여 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위기를 넘겼을 뿐이지 자동차공업 통합조치의 여파를 모두 털어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사실상 합리화 조치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다.

    1983년 일본 마쓰다와 이토추상사의 지분 참여를 받아들인 후, 이듬해 중앙기술연구소를 열었다. 1986년에 미국 포드와도 자본 제휴를 맺으며 오대양 육대주를 휘날리는 깃발(또는 물결무늬)을 형상화한 로고로 변경하고 여의도 거산빌딩을 인수하여 건물 이름을 기아빌딩으로 바꿔 입주하였다. 1987년 자동차공업 통합조치가 풀리고 프라이드, 콩코드로 다시 승용차 시장에 진출한 뒤 1989년 경기도 화성군[39] 우정면 석천리•이화리에 아산만공장(현 화성공장)을 준공하고 아산만출하사무소(현 화성출하사무소)를 개소하고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에 기아빌딩(북수원지점)을 개점했다.

    같은 해 필리핀 정부로부터 처음으로 국민차개발 참여업체로 지정받은 뒤 1992년 일본에 첫 현지법인을 세웠으며, 최초의 독자모델 세피아를 출시하고 여의도 2번사옥을 지으면서 확실하게 그룹을 키워갔다.

    1993년 아산만공장 내에 종합주행시험장을 완공한 후 1994년 1월부터 2021년까지 사용한 타원형 로고로 변경했다. 바뀐 이유는 그 전 로고의 모양이 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환경오염을 연상하게 해서 바꿨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쨌든 같은 해 세피아와 스포티지를 처음 독자적으로 수출하고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평리에 발안지점을 개점했다. 1995년 독일에 첫 해외 판매법인을 세우고 1996년에는 공식 홈페이지까지 개설하였다. (계열사 아시아자동차는 글자만 달랐다.)

    1990년대 중순에는 마쓰다주식회사 및 포드 모터 컴퍼니로의 의존도를 줄이고 엔진 기술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영국의 로터스 엔지니어링, 로버 그룹과도 제휴하였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로버 KV6 엔진의 한국 생산분, 그리고 로터스 엔지니어링에 운전역학 설계를 일정 부분까지 맡긴 기아 크레도스였다.

    1990년대 중순에 MBC 라디오에서 방송하는 잠깐만 캠페인에 협찬한 바 있다.

    모터스포츠 쪽에선 1995년에 WRC 호주 랠리 비개조 클래스(NP2, NP3)에 세피아로 출전한 5대, 8대의 차량중 1등을 한 기록이 있는 회사다.(이때 박정룡 선수가 NP2 클래스에 참가했다.) 당시 전체 순위는 각각 36, 28위였으며, 이날 경기 우승은 미쓰비시 랜서 에볼루션 3기가 차지했다. 또한 해외 지사의 출격이긴 하지만 다카르 랠리 완주 경험도 있다.

    1997년 7월 경영악화로 부도를 맞은 뒤 1998년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같은 해 6월 국제 공개 경쟁입찰로 처리방침이 확정됨에 따라 1998년 10월 현대자동차에 낙찰된다. 1999년 아시아자동차와 함께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어 현대그룹에 편입되었고, 6월에는 기아자동차판매, 아시아자동차, 기아대전판매, 아시아자동차판매 4개사를 통합한 뒤 2000년 2월 회사정리절차가 종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