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종현성당(鐘峴聖堂)·명동천주교당이라고도 한다. 한국 가톨릭의 상징이며 총본산이다. 이 교회 건축물은 부지 1만 4421㎡, 건평 1,498㎡이다. 평면은 길쭉하여 길이 69m, 너비 28m, 지붕의 높이는 23m, 종탑 높이는 45m이며, 지붕재료는 동판(銅板)으로 되어 있다. 라틴 십자형(十字形) 삼랑식(三廊式)의 장중한 고딕형으로 되었고, 내부에 있는 복자 제대(福者祭臺)와 복자 상본(像本)은 1952년 79위(位)의 복자 시복식(諡福式) 때 설치되었으며, 강대(講臺)는 위돌 박(푸아넬, 한자명 朴道行) 신부의 고향에 있는 성당의 강대를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터에는 판서(判書)를 지낸 윤정현(尹定鉉)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바깥채만 60여 칸이 되는 대형주택을 처음에는 그대로 이용하다가 헐고 언덕을 깎아내려 대지를 만들었다. 1883년에 대지를 사들이고 1892년(고종 29) 8월 정초식을 거행하였으나 청일전쟁과 고스트 신부의 별세로 중단되었다가, 위돌 박 신부에 의해 1898년 5월 축성식(祝聖式)이 거행, 완공되었다. 서울 대교구(大敎區) 주교좌(主敎座) 성당이며, 한국 최초의 본당(本堂)이다.
명동성당 건립은 1883년 무렵 김 가밀로의 명의로 종현(鍾峴) 일대의 대지를 구입하며 시작된다. 당시의 교구장 블랑(Blanc) 주교는 우선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서당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이후 풍수지리설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토지 분쟁이 있었으나, 1890년 이를 마무리지었다.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Mutel) 주교는 1892년 8월 5일 기공식을 갖고 한국 교회를 위해 일했던 주교와 선교사, 은인들의 명단을 머릿돌 밑에 묻고 머릿돌을 축성하여 고정시켰다.
성당의 설계와 공사의 감독은 코스트(Eugene Coste) 신부가 맡아 진행하였다. 그러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선종함에 따라 프와넬(Poisnel) 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성당 건축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1898년 5월 2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갖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하였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로 기록되어 있다.성당의 건축 과정에서 많은 신자가 무료로 노력 봉사를 하였으며, 성당의 건축에 쓰인 벽돌은 청나라의 벽돌공을 데려다가 만들었다.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하여 성당 명칭은 종현성당에서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