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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maan
rogermaan23.06.20

명동성당은 오래전에 건설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언제 설립된 것입니까

명동성당이 랜드마크이자 우리나라 성당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성당이라고 들었습니다 명동성당은 언제 설립이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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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6.2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동성당의 착공은 1892년 5월 8일이며

    완공은 1898년 5월 29일입니다.

    공사기간은 대략 6년정도 소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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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조사를 해본결과 명동성당은 대한민국 최초의 로마 카톨릭 대성당으로 189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이후 1907년에 대대적인 확장공사가 이루어졌으며, 1930년대에는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인 높은 첨탑을 갖추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광복 이후에는 교황청의 국적상승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로마 카톨릭 교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성당 역사에서 아주 오래된 성당 중 하나이며,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빛나는 랜드마크입니다. 참고 하셔서 도움되셨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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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명동성당은 한반도에 처음으로 지어진 대규모의 고딕 양식 천주교 성당으로 한국 최초의 본당입니다.

    설립일은 1898년 5월 29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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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77년 11월 22일 사적 제258호로 지정되었다. 종현성당(鐘峴聖堂)·명동천주교당이라고도 한다. 한국 가톨릭의 상징이며 총본산이다. 이 교회 건축물은 부지 1만 4421㎡, 건평 1,498㎡이다. 평면은 길쭉하여 길이 69m, 너비 28m, 지붕의 높이는 23m, 종탑 높이는 45m이며, 지붕재료는 동판(銅板)으로 되어 있다. 라틴 십자형(十字形) 삼랑식(三廊式)의 장중한 고딕형으로 되었고, 내부에 있는 복자 제대(福者祭臺)와 복자 상본(像本)은 1952년 79위(位)의 복자 시복식(諡福式) 때 설치되었으며, 강대(講臺)는 위돌 박(푸아넬, 한자명 朴道行) 신부의 고향에 있는 성당의 강대를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터에는 판서(判書)를 지낸 윤정현(尹定鉉)의 저택이 있던 곳으로 바깥채만 60여 칸이 되는 대형주택을 처음에는 그대로 이용하다가 헐고 언덕을 깎아내려 대지를 만들었다. 1883년에 대지를 사들이고 1892년(고종 29) 8월 정초식을 거행하였으나 청일전쟁고스트 신부의 별세로 중단되었다가, 위돌 박 신부에 의해 1898년 5월 축성식(祝聖式)이 거행, 완공되었다. 서울 대교구(大敎區) 주교좌(主敎座) 성당이며, 한국 최초의 본당(本堂)이다.

    명동성당 건립은 1883년 무렵 김 가밀로의 명의로 종현(鍾峴) 일대의 대지를 구입하며 시작된다. 당시의 교구장 블랑(Blanc) 주교는 우선 신학생 교육을 위한 종현서당을 설립, 운영하였으며, 이후 풍수지리설과 관련하여 한국 정부와 토지 분쟁이 있었으나, 1890년 이를 마무리지었다. 블랑 주교의 뒤를 이은 뮈텔(Mutel) 주교는 1892년 8월 5일 기공식을 갖고 한국 교회를 위해 일했던 주교와 선교사, 은인들의 명단을 머릿돌 밑에 묻고 머릿돌을 축성하여 고정시켰다.

    성당의 설계와 공사의 감독은 코스트(Eugene Coste) 신부가 맡아 진행하였다. 그러나 1896년 2월 코스트 신부가 선종함에 따라 프와넬(Poisnel) 신부가 업무를 이어받아 성당 건축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1898년 5월 29일,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당 축성식을 갖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하였다. 역사적으로는 한국 근대 건축사에서 가장 규모가 큰 첫 고딕 양식 건축물(사적 제258호)로 기록되어 있다.성당의 건축 과정에서 많은 신자가 무료로 노력 봉사를 하였으며, 성당의 건축에 쓰인 벽돌은 청나라의 벽돌공을 데려다가 만들었다.1945년 광복을 기점으로 하여 성당 명칭은 종현성당에서 명동성당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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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천지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울 명동성당은 1977년 사적으로 지정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유일한 순수한 고딕양식의 연와조 건물이며 1892년(고종29)에 착공하여 1898년에 준공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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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순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당이 있는 명동 언덕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 김범우 토마스의 집이 있던 곳으로 '명례방'이라 불렸던 곳이다. 이곳은 한국에서 처음 천주교 전례가 거행된 장소이기도 하다.


    김범우 토마스는 자신의 집에서 이승훈 베드로, 정약전 안드레아 등과 함께 천주교 서적을 연구하고 자체적으로 공소 예식을 드렸다. 포도청 당국이 이를 적발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명문가 자제라서 적당히 훈방 조치했지만, 김범우는 중인 계급이라 고문을 받고 귀양을 가다가 사망했다. 이후 조불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된 해인 1886년부터 조선에서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고 나서 새로 성당을 짓기 시작한 것이 이 명동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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