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은 임진왜란 이후 전후 복구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토지 대장과 호적을 정비하여 인구와 토지를 파악하여 재정을 확충하였습니다. 또한 방납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대동법을 시행했으며 동의보감을 편찬하고, 사고를 정비했습니다. 또한 궁궐을 복원하여 왕실의 위상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외교적으로 명과 후금 사이에 중립 외교를 펼쳐 전쟁을 피하였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북인 세력에 집중하여 붕당 간의 갈등을 심화시켰으며,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폐하였습니다. 또한 지나친 궁궐 복원으로 많은 비용을 지출하여 재정을 악화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