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광해군이 즉위 직후 형 임해군을 역모죄로 몰아 처형하였을 때 이원익은 역모죄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임해군 억울함을 간청하였고 친족을 중하게 여겨 자애로움을 보여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총 23차례 사직을 청하였고 마침내 광해군은 그의 사직을 허락하였지요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죽였을 때에도 영창대군의 친모 인목왕후를 폐출하려 했을 때에도 이원익은 이를 극력 비판하였습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광해군에게 글을 올려 어머니가 자애롭지 못하더라도 아들은 불효 할 수 없는 것이라며 광해군에게 패륜을 저지르지 말 것을 강력히 충고하였습니다 그러나 광해군은 이원익의 충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그를 강원도 홍천으로 유배를 보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