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무르 제국을 세운 티무르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중앙아시아 있어 갑자기 나타난 티무르 제국은 엄청난 영역과 정복 사업으로 유명한데요 이런 티무르 제국을 세운 티무르는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무르는 1369년 트랜스속시아나지역의 실권을 장악해서 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티무르제국(1370~1506)을 성립시켰습니다.
징키스칸의 뒤를 따라 세계정복에 나선 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그의 신하들로부터 ‘사히프 이 키란’이라 칭해졌는데 이것은 ‘별이 교차할 때 태어난 왕자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로서 페르시아에서는 모세, 그리스도, 무함마드 등이 모두 별이 교차할 때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고있었는데 티무르도 이렇게 칭해짐으로써 이들 성자들의 무리에 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티무르는 유럽세계에서는 태멀레인(Tamerlane)으로 알려졌는데 이것은 ‘티무르 이 렝’ 즉,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페르시아어의 사투리에서 기원한 단어라고 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무르는 1336년 서차가타이한국의 사마르칸드의 남방에 위치한 케쉬의 교외에서 출생했고 그의 혈통이나 성장과정에 대해 상세히 전하지 않지만 투르크계였음은 분명하며 당시 서차가타이한국의 형식적인 통치계층은 몽골족 가문 출신이었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투르크계에 있었는데 이러한 투르크계 가문들 중 하나에서 티무르가 출생합니다.
티무르는 성장한 후 투글룩 테무르가 동서차가타이한국을 통일하자 새로 등장한 몽골인 군주에게 충성을 맹세하였고 투글룩 테무르는 그를 케쉬의 통치자로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야망을 가진 티무르는 당시 발크의 통치자로 있던 미르 후께인과 동맹을 맺어 투글룩 테무르의 동차가타이한국의 군대를 몰아내고 에미르들을 멸망시켰고 정치적 라이벌이던 미르 후쎄인마저 굴복시킴으로써 마침내 1369년 트랜스속시아나지역의 실권을 장악해 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티무르제국을 성립했습니다.
그는 그의 신하들로부터 사히프 이 키란이라 칭해졌는데 이것은 별이 교차할 때 태어난 왕자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로서 페르시아에서는 모세, 그리스도, 무함마드 등이 모두 별이 교차할때 세상에 태어났다고 믿고있었는데 티무르도 이렇게 칭해짐으로써 이들 성자들의 무리에 끼게 되었습니다.
티무르는 유럽세계에서는 태멀레인으로 알려져있는데 이는 이무르 이 렝 으로 즉 절름발이 티무르라는 페르시아어의 사투리에서 기원한 단어입니다.
그가 절름발이였다는 것은 젊었을 때 전쟁에서 받은 상처가 원인이 되었다고 하며 티무르가 건설한 제국과 칭기스한이 건설한 제국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존재했는데, 칭기스한의 몽골제국은 기본적으로 단일민족의 통치체제를 구축하였고 확고한 기반위에 성립된 것이었으나 티무르제국은 그러하지 못했습니다. 티무르제국의 취약성은 다수민족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며 그 문제를 극복할수있었던 것은 오직 티무르와 그의 후계자의 탁월한 개성과 지도력이었습니다.
티무르제국의 문화는 투르크-페르시아 전통에 속하였고 법률제도는 투르크-몽골제국이 확립한 것에 기반을 두었고, 정치 및 종교구조는 이슬람과 몽골전통의 혼합된 형태였습니다. 티무르 제국에는 몽골제국처럼 다이나믹한 중심이 없었고 황실의 전통 또한 없어 티무르가 사망하고 약 반세기 후에 티무르제국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시아의 대정복자(大征服者). 티무르 제국의 시조. 유럽에서는 그를 타메를란(Tamerlan)이라고도 한다. 원(元)의 소족(疎族)으로 차가타이 칸국(察合台汗國)의 재상 하라사르노안[哈刺沙兒諾顔] 5세 손으로 사마르칸드 부근의 케시에서 출생. 장성하여 영매(英邁) 과감하고 도량이 넓고, 칭기즈칸을 이상의 인물로 섬겼다. 차가타이 칸 알리우스 크와제(Alyus Khwajeh)와 충돌하고 자립하여 1370년 중앙 아시아를 점령하여 사마르칸드에 도읍하고, 세계 통일의 대업을 계획하였다. 먼저 차가타이 칸국을 병합하고, 일 칸국(汗國)을 정복하고, 킵차크 칸국의 내란에 간섭하고, 다시 인도 방면에도 침입하여 1402년 오스만 터키의 바야지트 1세의 군을 앙골라에서 격파하였다. 이어서 원나라의 원수를 갚고, 회교(回敎)를 중국에 펴려고 스스로 대군을 이끌고 정명(征明)의 길에 올랐으나 도중에 오트라르(Otrar)에서 병사(病死)하였다.
출처 :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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