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베트남의 실권자 똔텃뚜옛이 어린 황제 함기를 데리고 궁중을 탈출하여 광찌지방의 산간지대에 거점을 확보하고 근왕령을 반포하여 의군을 조직하고 프랑스군대와 싸운 독립운동입니다. 1883년과 1884년 두 차례 프랑스와 맺은 조약으로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였습니다. 더욱이 1885년 청불전쟁의 승리로 중국의 영향력이 없어지자 프람스의 정부에 대한 간섭이 노골화되었습니다. 이에 당시 전국의 문신들이 대불전쟁에 나설 것을 호소한 황제의 근왕령에 호응하여 지방의 학자와 지주들이 각지에서 의군을 일으키게 됩니다. 프랑스측은 새로운 황제를 즉위시키는 동시에 그의 이름으로 무위신호의 조서를 발표하여 황제 함기의 망명조정을 불법화하고 동조자들을 역적으로 규정한 반면 투항하는 문신들에게는 관용을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항복하는 자들이 나타나기도 하였고 1988년 11월 함기가 산지 소수민족의 밀고로 체포되어 알제리로 유배되자 구심점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이로써 끝난게 아니었습니다. 이 운동의 구심점인 인물인 판딘풍과 호앙호아탐은 그후에도 장기간 프랑스에 저항하였습니다. 이들이 계속 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초기의 지도자들과는 다르게 우수한 조직력 무기의 근대화 및 농민들과 밀착이었습니다. 이 운동은 19세기 한국의 우정척사운동과 맥을 같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