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학문
수리무
수리무
23.11.01

요나라의 소태후가 전쟁을 직접 진두지휘 했나요?

중드를 보니까 요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다가 결국 전연의 맹약을 맺고 끝나던데 거기서 보니까 소태후가 직접 전투에나가서 진두지휘 하던데 이 장면은 드라마의 허구인가요?

아니면,실제로 전투를 지휘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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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의 답변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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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영화 전문가blue-check
    유영화 전문가
    남성학원
    23.11.01
    학문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말로 좋은 질문입니다.(좋아요^^)

    요나라는 거란족이 세운 정복왕조입니다. 유목 민족 가운데, 중국의 일부 또는 전체를 지배한 최초의 정복왕조이기도 합니다. 요나라는 바로 중국의 연운 16주를 차지하여 한족을 직접 지배하였습니다.

    요나라 제 5대 황제의 당시에는 요나라의 가장 전성기 시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전성기를 이끈 인물은 한 여인이었으며, 그가 바로 경종의 황후 소태후 '승천황태후'입니다. 소태후는 아들 성종을 거느리고 몸소 20만 대군을 지휘하여 송나라를 공격하였습니다. 요나라의 군대는 승리를 거듭하여 파죽지세를 남하하였고, 3개월 만에 전연에 이르렀습니다. 전연은 현재 허난성 푸양현 근방으로 하루면이면 송나라의 수도 카이펑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전쟁을 지속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실 소태후는 화친을 염두하고 전쟁을 감행했습니다. 송나라도 같은 입장이었으며, 두나라는 평화롭게 '전연의 맹(1004)'를 맺습니다.

    전연의 맹은 명분을 중요시하는 한족을 특성을 안 요나라 황제 성종은 송나라 호아제 진종에게 '형'이라는 칭호를 부르는 조건으로 막대한 이윤을 차지하게 됩니다. 요가 빼앗은 10성을 돌려주는 대가로 매년 은 10만냥과 비단 20만필을 세폐로 받치는 조건입니다.(사실 빼앗은 10개성은 영토 분쟁 지역으로 수비에 곤란함) 소태후의 활약과 전연의 맹으로 요나라는 동북아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었으며, 120년동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좋아요^^)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요나라 경종의 황후이자 성종의 어머니입니다. 12살에 성종이 즉위하자 황태후가 되어 대권을 장악했습니다. 송나라를 위협하여 송나라 진종과 전연의 맹약을 체결했습니다. 섭정하는 동안 인재를 등용하고 각종 개혁 정책을 펴 거란족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전장에 나가 북송과 맞서 싸웠던 사실도 꽤 유명합니다. 송태종이 30만 대군을 이끌고 요나라로 처들어 오자 태후 자신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송나라 군을 패퇴시킨 것입니다. 1004년에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송을 공격했습니다. 그런데 요 장군 소달람이 송나라 군의 화살을 맞고 죽자 요나라 군의 사기가 떨어졌는데 때마침 송진종은 요와 싸위기 싫은 주화파여서 요와 화친을 청하자 소태후는 이를 놓치지 않고 양국이 형제 괸계를 맺고 휴전에 응하여 매년 20만필의 비단과 백은 10만냥을 요나라에 바칠 것을 요구하는 전연의 맹을 맺어 요의 국익을 극대화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