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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8년에 요동정벌군의 좌군도통사로 출정한 이인임은 이인임의 아버지의 사촌 누이의 소생 아들입니다. 지위로 보면 이성계 보다 상관입니다. 그런데 위화도 회군 이후 이런 지위를 가지고 있는 조민수는 자신에게 베푼 은혜를 생각하여 이인임의 외종형제인 이임의 딸인 근비의 아들인 창을 왕으로 옹립합니다. 이로 인해 이인임은 우왕을 폐하고 왕창을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여 충근양절선위동덕안사공신에 양광전라경상서해교주도도통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1389년에 이성계 일파의 전제개혁을 반대하여 조준 등에 의해 탄핵되어 창녕에 유배되었습니다. 이후 창왕의 생일에 특사로 풀려나왔지만, 우왕의 혈통을 둘러싼 논쟁으로 이성계 일파에 대항하다가 서인으로 강등되어 1390년에 다시 창녕으로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성계의 정적 이이임과 그리고 우, 창왕과도 관계가 있으며, 혁명파 신진 사대부들의 토지 개혁과 '폐가입진' 논쟁으로 희생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