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에서 한민족이 마지막으로 요동을 점령한 때는 언제인가요?
한국사에서 요동지역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 등 다양한 나라들이 주요 터전으로 삼았던 지역입니다.
조선이 건국되기 직전에는 이성계가 요동정벌에 나섰다가 위화도회군을 하기도 하였었는데요.
한국사에서 한민족이 마지막으로 요동을 점령한 때는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유민이 당의 지원하에 요동에 건설한 국가.
나당전쟁 이후 대동강 이남의 땅이 신라의 지배에 들어간 후 당은 평양에 설치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성(요양)으로 옮겨 요동지방을 관할하도록 했다. 그러나 고구려 유민들의 반항으로 뜻대로 되지 않자 당은 보장왕(寶藏王)을 요동도독으로 삼고 조선왕으로 봉해 고구려인을 안집(安集)케 하였다(677).
이후 보장왕은 요동에 있는 고구려인의 모든 주를 관할했으며 안동도호부는 신성(新城, 무순(撫順) 부근)으로 옮겨가 그를 감시하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보장왕은 말갈과 서로 통해 당에 대한 반항운동을 꾀하려던 사실이 발각되어 당으로 소환되어 갔으며, 그 후 보장왕의 손자인 고보원(高寶元)을 666년과 688년 두 차례에 걸쳐 충성국왕으로 보내려 하였으나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다. 699년 보장왕의 아들 고덕무(高德武)를 안동도독으로 임명해 요동지방의 고구려 유민을 통치하게 했다. 이보다 앞서 698년 당이 안동도호부를 폐지하였으므로 고덕무는 도호부의 감시를 받지 않고 안동도호부가 관할하던 지역을 통치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를 소고구려국이라 부르기도 했다.
당시 거란의 이진충에 의해 영주(營州)가 점령되어 당에서 요동으로 통하는 육로가 차단되었고 북만주에는 발해가 건국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요동에 친당적(親唐的)인 국가를 건설해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당은 고덕무를 요동에 보내어 소고구려국을 건설하도록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요동지방에 있던 고구려 유민의 끈질긴 항쟁의 결과였다. 소고구려는 당과의 투쟁 속에서 성장해간 신라나 발해와 같이 독자적 발전을 이룩할 수는 없었으나 요동지방을 지배하며 반(半)독립적인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출처 : 한국고중세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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