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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바틱23.03.17

조선시대 비변사는 어떤 정치기구였나요?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최고의결기관이 의정부에서 비변사로 바뀐 것이 쭉 이어지다가 흥선대원군 집권이후에야 폐지됐다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치기구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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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정치체제는 왕권과 의정부(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육조(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 삼사(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의 체계였습니다.

    잦은 외세의 침략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변사재상이라는 기구가

    삼포왜란이 일어나면서 비상시국에 대비하기 위해 개편되어 비번사가 되었습니다.

    이후 독립관청이 되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국난 수습, 타개를 위한

    비변사는 전쟁 수행을 위한 최고기관으로 작동되어 그 기능이 확대, 강화되었습니다.

    외교, 국방, 수령의 임명, 군율의 시행, 논공행상 청병, 둔전, 공물진상, 시체매장, 군량운반, 훈련도감 설치 등 재정에 이르는 실질적인 국정 전반을 총괄한 기구였습니다.

    임진왜란 비변사 관원은 도제조, 부제조, 낭청 등으로 조직되었으며,

    도제조는 현직의 3의정이 겸임하기도 하고, 판서들도 겸임하면서 실질적인 권력기구였지만 흥선대원군 집정기에 폐지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병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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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군국기무를 관장한 문무합의 기구입니다.

    비국(備局)·주사(籌司)라고도 한다. 조선의 군사행정은 국방부격인 병조에서 관장하였는데, 외적의 침입 등 변방에 국가적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병조 단독으로 군사 문제를 처결할 수 없어, 의정부와 육조(六曹)의 대신, 그리고 변방의 일을 잘 아는 지변사재상(知邊司宰相:경상도·전라도·평안도·함경도의 관찰사와 병사(兵使)·수사(水使)를 지낸 종2품 이상의 관원)으로 구성한 회의에서 협의, 결정하였다.

    그러나 이 회의는 대개 적의 침입이 있다는 보고를 받은 연후에 소집되어 즉각 대처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남쪽 해안과 북쪽 국경지대에 대한 국방대책을 사전에 마련하기 위해, 1517년(중종 12) 6월 비변사를 설치하였다.

    출처 :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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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비변사는 인사 군사 비빈 간택 등 국정 최고기관으로 왕권을 제약하며 조선시대 군국 기무를 관장하는 행정 관청입니다.

    조선 전기 병조판서에서 문관을 임명하고 성종때 왜구와 여진의 침입이 많자 지변사 재상제를 도입했고 변경 사정에 밝은 종 2품이상의 무관을 참석시켜 협의하게 했습니다.

    1501년 중종때 삼포 왜란이 발발하자 도체찰사를 설치하고 병조 안의 종사관에게 업무를 맡기고 비변사라 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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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경제&금융 분야, 재무설계 분야, 인문&예술(한국사) 분야 전문가, 지식iN '절대신 등급' 테스티아입니다.

    ✅️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군사적인 부분을 보다 보강할 필요성이 있다는 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형성된 군국기무와 관련된 사실상의 최고 회의기구(ex. 고구려의 제가회의, 백제 정사암회의 개념)이며, 문관과 무관이 모두 참여하였었다는 점이 특별한 점이었습니다.

    - - - 추가적으로 궁금하신 점은 의견으로 남겨주시면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답변을 드려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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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비변사는 조선의 최고 의결 기관으로, '국경 변방(邊)의 일에 대비(備)하는 기관(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약칭으로 비국(備局)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본래 조선 초 전쟁 등 비상시를 대비해 설치되었으나, 임진란 때 국무 수행 기능을 이양받았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계속 유지되면서 이후 의정부의 기능을 물려 받아 최고 국가 의결기관이 되었다고 합니다.조선 초기의 비변사는 오늘날로 따지자면 대통령, 국무총리, 외교부 장관, 통일부 장관, 국방부 장관 및 국가 정보 원장과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위원으로 구성되는 국가 안전 보장회의 (NSC)와 비슷한 기능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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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비변사(非邊事)는 조선시대에 왕실에서 관리하던 비밀국사 기관 중 하나입니다. 비변사는 왕실의 비밀 문서와 중요한 기밀 정보를 보호하고, 조사하고, 보고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비변사의 정확한 설립 시기는 알려지지 않지만, 조선 초기에는 비밀문서를 다루는 사무소(秘書署)가 있었으며, 이것이 비변사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비변사는 실질적으로 왕과 왕실의 비밀사항을 관리하고, 왕과 왕위 계승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일종의 첩보 기관처럼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왕과 왕실의 비밀 문서나 기밀 정보를 다루다 보니, 비변사의 직원들은 국가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철저한 규율과 법규를 준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비변사는 그만큼 권력을 행사하고, 비밀 정보를 이용하여 다양한 권력을 소지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변사는 왕실 내부에서도 강력한 대립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천문과학적 지식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보유한 인재들이 비변사에 들어가게 되면서, 왕권과 대립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비변사는 조선 말기에는 무용이 되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변사의 역할과 기능은 이후에도 첩보 기관, 국가 비밀 보호 기관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오며, 현재에도 국가 비밀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에 대한 대응과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비변사의 역할과 기능이 떠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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