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은 강조정변(서경 도순검사 강조가 목종을 펴위시키고 현종을 옹립한 사건)을 빌미로 1010년 요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침입해왔으나 홍화진에서 양규장군의 분투로 우회하여 20만 대군을 개경으로 보냈으나 현종은 강감찬의 작전상 후퇴 의견을 받아들여 몽진을 떠난 뒤였습니다. 이에 친조 약속을 받아들여 거란을 물러가게 됩니다. 이후 현종의 친조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거란은 1018년에 소배압의 10만 대군으로 3차 침입을 해왔으나 강감찬 장군의 활약으로 귀주에서 대승을 거둬 거란군 중 살아 돌아간 이는 수천에 불과하였습니다. 이후로 거란은 고려를 침입하지 못했고 여진이 세운 금나라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