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호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대 이전까진 어느나라나 음서제도(추천받아서 관직 하는 것) 비슷한 것을 했습니다
사람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테스트가 없거나
그런 테스트를 전국민에게 할 행정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알아서 인맥이랑 뇌물로쓸 제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지가
유능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죠
십상시는 환관으로써 황제의 각종 업무부터 사생활까지 모두를 보조 했으니
황제가 어느 음서를 받을 지도 환관이 맘대로 할 수 있었던 겁니다
물론 제대로된 나라는 환관을 견제하는 세력이 있지만
그런게 없어 졌으니까 후한이 썩어서 망한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