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은 왜 대형수산시장이 형성됐나요?
노량진역을 나오면 바로 수산시장이 보입니다. 회를 사러 종종 가곤 하는데 노량진은 어떤 이유때문에 대형 수산시장이 형성된건지 궁금하네요.
안녕하세요. C0FFEE입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한국에서 가장 큰 대형 수산시장 중 하나로, 그 규모와 유명도로 인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중 하나입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1927년에 출범하여, 그 당시 수도권에서는 전통적으로 양식업이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수산물 수요도 높아지면서, 수산물 유통과 판매를 위한 대형 시장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노량진 지역에 수산시장을 개장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지금까지 수십 년간의 역사를 가지며, 오랜 세월동안 지속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그리고 시장 내에서 판매되는 수산물은 해산물부터 각종 조개류, 해조류, 건어물 등 다양하며, 전국 각지에서 유명한 지역의 특산물도 판매됩니다.
또한, 노량진 수산시장은 대한민국의 수산업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대형 수산시장으로서 국내외의 다양한 고객들이 구매하는 곳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국내 수산물 유통 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량진 수산시장의 역사와 업적은 국내 수산업의 발전과 함께한 그 자체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타박스입니다.
노량진은 옛 조선시대때부터 나루터로서 수상 교통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조선시대 태조 때 서울(한양)로 도읍을 옮기면서 한강을 통한 전국의 물자 교류가 늘었으며, 연산군 때는 다른 한강 나루를 봉쇄하여 노량진에서만 통행할 수 있도록 한 적도 있었습니다. 한강에 최초로 설치된 근대식 교량인 한강철교(1900)와 한강 인도교(1917)는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여 당시에도 교통량이 많은 지역 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노량진수산시장의 전신은 1927년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경성수산시장입니다. 경성수산시장은 염천교에 자리를 잡아 염천시장이라고도 불렸는데, 경성역(서울역) 인근이라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에 수산물을 철도로 운송하여 빠르게 유통할 수 있었습니다.
광복과 6·25전쟁 후 인구가 늘면서 도시 미화 작업이 시작되었고, 서울 수산시장(경성수산시장)은 염천교에서 노량진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노량진은 조선시대부터 교통이 발달한 포구였습니다. 서울역 인근 서울수산시장이 노량진으로 이전한 이유도 시장 옆 노량진역이 당시 경인철도의 시발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농어촌개발공사(현재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와 한국냉장주식회사는 아시아개발은행ADB에서 차관 700만 달러를 들여와 1971년 9월부터 한냉중앙시장으로 노량진에 들어섰고, 이후 규모가 더 커지며 지금의 명칭인 노량진수산시장이 되어 1980년대 중반까지 서울 수산물 도매시장의 중추 역할을 하였습니다. 서울아시안게임(1986)과 서울올림픽대회(1988)에 대비하여 서울 송파구 가락동에 농수산물 도매시장(가락시장)이 개장되자 역할이 분산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1990년대부터 시장 기능 활성화를 위한 현대화 작업이 이뤄졌고, 2015년 10월부터 지금의 현대식 신축 건물에서 실내 시장으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