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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 윤씨는 1473년 성종의 후궁으으로 간택되어 숙의로 봉해졌으며, 1476년 성종의 총애로 왕비로 책봉되고 연산군을 낳았습니다. 그너라 왕비가 된 이후 투기가 심해 1477년 빈으로 강등되고, 1479년 폐비되어 출궁되었습니다. 1482년 사사되었습니다.
그런데 1489년 연산군이 즉위 한 이후 뒤늦게 생모의 죽음을 알게 되었으며, 그 것이 갑자사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연산군이 다른 왕과 다르게 묘호를 없는 것은 중종 반정으로 폐위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