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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불독44
냉철한불독4423.08.16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떻게 피살당했나요?

흑인인권운동가이자 지도자이고,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어떻게 피살당했나요? 피살당했을 당시 피의자는 잡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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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16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0년대에 흑인 권리 운동과 인권 운동을 통해 일정의 법률적인 결과를 획득하였고,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에도 동참하였습니다. 그는 맬컴 엑스의 폭력주의 노선에 반대하고 비폭력적인 저항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1968년 4월 테네시주의 흑인 미화원 파업운동을 지원하러 내려갔다가 멤피스에서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경찰은 북부 출신의 백인우월주의자 제임스 얼 레이를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한편 그를 암살하기 위해 인종 차별주의자들이 사람을 보냈다는 파다한 소문이 그의 귀에도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는 개의치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4월 3일 열린 흑인 청소노동자 모임에서도 이 소문을 접한 흑인 청소노동자들은 그에게 피신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킹은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오래 살고 싶다. 나라고 왜 오래 살고 싶지 않겠나?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는다. 단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8년 4월 4일 과격파 백인단체 소속의 제임스 얼 레이가 쏜 총에 맞아 암살당했습니다.

    그는 인종차별주의자였고 당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조지 윌리스의 지지자, 조지 윌리스가 역설한 분리주의 이론에 푹 빠진 사림으로 이전에도 교도소를 3번이나 복역한 범죄자여고 세번째 범죄를 저지르고 2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는데 1967년 탈옥한 상태였습니다. 이후 미국과 멕시코를 오가며 도망생활을 하다 앨라배마 주 버밍엄에서 가명으로 레밍턴 모델 760소총과 30-60 스프링필스 총알 20발, 망원 조준경을 구입, 4월 2일 테네시 주 멤피스로 와서 마틴 루터 킹이 투숙하는 로레인 모텔 맞은편 셋방을 빌립니다.

    사건 당일 저녁에 마틴 루터 킹은 306호 앞 발코니에서 제시 잭슨 목사와 대화중이었고 오후 6시 1분 제임스 얼 레이는 레밍턴 모델 760을 킹 목사에게 겨누고 방아쇠를 당깁니다.

    총알은 킹 목사의 오른쪽 뺨 아래쪽으로 뚫고 들어갔고 척추와 경정맥 및 동맥을 관통, 어깨에 박히게 됩니다. 총을 맞은 후 맥박이 살아있어 킹 목사는 인근의 성 요셉 병원으로 이송되나 오후 7시 5분 사망합니다.

    제임스 얼 레이는 킹 목사를 살해 후 총을 버리고 도주, 애틀랜타를 들러 캐나다 토론토로 도망, 거기서 가명으로 가짜 캐나다 여권을 구해 영국으로 도망, 영국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도망, 다시 런던으로 돌아갑니다. 벨기에 브뤼셀로 도망치려다 가짜 여권이 발각, 영국 경찰에 체포되어 미국으로 추방, 추방된 그는 FBI에 체포되어 99년형을 언도받아 복역하다 1977년 탈옥을 감행하지만 3일만에 붙잡혔고 형은 100년으로 늘고 1998년 교도소에서 지병이 악화되어 70세로 사망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68년 3월 29일 마틴 루서 킹은 흑인 환경미화원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테네시주 멤피스를 방문했다. 궂은 날씨 탓에 일을 하지 못하고 귀가한 흑인 근로자들은 2시간치 임금을 받은 반면, 함께 귀가한 백인 근로자들은 하루치 임금을 받았던 것. 마틴 루서 킹이 멤피스로 타고 가는 항공편에 대한 폭파 위협 때문에 출발이 지연되기도 했다.


    4월 3일 마틴 루서 킹은 메이슨 교회에서 자신의 생애 마지막 연설을 했다. 이 연설 말미에는 폭파 위협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2월 4일의 설교와 마찬가지로, 죽음을 예견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내가 멤피스에 오려 했을 때, 사람들이 그 위협에 관해, 아니 지나간 위협에 관해 말하더군요. 우리의, 마음이 병든 백인 형제들이 나에게 어떤 일을 하려 할까요?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어려운 날들이 기다리고 있겠지요. 그러나 이제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산정(山頂)에 올라봤으니 말입니다. 난 개의치 않습니다.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오래 살고 싶지만 인명은 재천이겠지요. 이젠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고자 할 뿐입니다. 그 분은 제가 산정에 오르는 걸 허락했습니다. 그곳에서 굽어보았지요. 약속의 땅을 보았지요. 여러분과 함께 그곳에 가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밤 여러분께 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서, 바로 그 약속의 땅에 반드시 도착하게 되리라는 걸 말입니다. 오늘밤 나는 행복합니다. 그 무엇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나의 눈은 주님께서 오시는 영광을 보았으니까요.”

    멤피스의 로레인 모텔에 투숙한 마틴 루서 킹은 4월 4일 오후 6시1분, 2층 발코니에 서 있다가 저격 당했다. 총탄은 그의 오른쪽 뺨을 뚫고 들어가 턱을 지나 척수를 망가뜨리고 어깨에 박혔다. 범인으로 체포된 인물은 제임스 얼 레이. 그러나 그가 범행 자백을 번복하면서 마틴 루서 킹 암살에 관한 갖가지 음모론이 제기됐고 논란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이 위대한 영혼이 저격 당하기 전 발코니에서 한 마지막 말은(현장에 있던 제시 잭슨의 증언) 이러했다. “이봐 벤! 오늘 밤 ‘주여 이 손을 잡아주소서’를 꼭 연주해주게나. 정말 멋지게 말이야.” 그날 밤 행사에서 연주하게 되어 있던 벤 브랜치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마틴 루서 킹은 응급 처지를 받았으나 7시 5분 공식 사망 선고가 이루어졌다. 당시 나이 39세. 검시(檢屍) 결과 마틴 루서 킹의 심장은 60대 나이 상태였다고 한다. 불꽃같은 삶이 그의 심장을 너무도 빨리 태워버렸기 때문이었을까?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 미국의 연방 기념일이자 공휴일, 바로 ‘마틴 루서 킹의 날’이다. 2009년의 ‘마틴 루서 킹의 날’은 1월 20일,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취임 하루 전이었다. 이 날 오바마는 자원봉사에 동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몽상가가 아니라 실천가이자 행동가였던 인물, 낮은 곳에서 변화를 위해,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정의와 평등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이러한 오늘 수백, 수천, 아니 수백만의 우리 미국인들이 바로 그 인물, 킹 목사의 뜻을 받들고 있습니다.” 마틴 루서 킹의 심장은 지금도 타오르고 있다

    출처 : 인물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