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해래본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훈민정음 해래본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궁금하고 또
최초의 해래본 원본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잘 보존되고 있는지..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민정음은 크게 ‘예의’와 ‘해례’로 나누어져 있다. 예의는 세종이 직접 지었는데 한글을 만든 이유와 한글의 사용법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해례는 성삼문, 박팽년 등 세종을 보필하며 한글을 만들었던 집현전 학사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상세하게 설명한 글이다. 우리가 국어 시간에 배웠던 "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로 시작되는 문장은 예의의 첫머리에 있는 한문으로 된 서문을 우리말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흔히 『훈민정음 언해본』이라 부른다.
서문을 포함한 예의 부분은 무척 간략해 『세종실록』과 『월인석보』 등에도 실려 있어 전해져 왔지만, 한글 창제 원리가 밝혀져 있는 해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의와 해례가 모두 실려 있는 훈민정음 정본이 1940년에야 발견되었다. 그것이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드디어 해례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훈민정음 해례본』이 대중에게, 그리고 한글학회 간부들에게 공개된 것은 해방 후에 이르러서였다.
첫머리에 훈민정음 창제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한글학자들도 해례본이 없었기 때문에 창제의 원리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고대 글자 모방설, 고전(古篆) 기원설, 범자(梵字) 기원설, 몽골문자 기원설, 심지어는 화장실 창살 모양의 기원설까지 의견이 분분했다. 이런 것들은 일제강점기의 일본 어용학자들의 주장이었다. 특히 1937년 일본은 만주를 침략하고 중∙일 전쟁을 일으키고, 아시아 대부분을 장악한 후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을 공습함으로써 전장을 태평양 너머까지 확장시켰다. 일제는 전시체제를 강화하는 한편 한국인의 민족의식과 저항의식을 잠재우기 위해서 특단의 조치를 취한다. 식량배급제가 강화되고 일제의 수탈은 혹독해졌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을 우리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라고 배웠다.
내선일체, 황국신민, 창씨개명, 일선동조론, 신사참배 등 방법도 다양했지만 문제는 그 질이 불량했다는 점이다. 그 중 가장 악랄했던 정책은 우리말과 글에 대한 탄압 정책이었다. 1942년 12월 일본어 사용에 반하여 한글을 연구하는 학술단체의 임원 33인을 투옥시킨 ‘조선어학회’ 사건이 발발한다. 이때 이윤재, 한징과 같은 사람은 옥사하기까지 했다.
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정신을 담는 그릇은 바로 그들의 언어다. 언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 즉 세계관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일제는 진정으로 우리 말과 글이 사라지길 바랐다. 18세기 조선의 실학 연구자들은 중국의 중화사관으로부터 탈피하여 우리 고유의 문물과 사상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 이때 실학자들의 학문적 성과가 바로 훈민정음 언해본의 발견이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훈민정음 원본인 해례본을 한글로 풀어쓴 것이다. 일제는 18세기에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등 언해본 자체의 진위를 허구로 몰아갔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는 해례본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해례본을 없앤다면 조선초까지 소급되는 세종조의 한글 창제의 신화는 물거품이 될 수 있으며 우리 정신을 담는 그릇의 뿌리와 기원을 허구화될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1940년대 초기에 이미 우리나라를 넘어 동북아시아에 이름이 알려진 대수장가였다. 간송은 김태준이라는 당시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국문학자로부터 해례본의 실존 소식을 접한다. 당시 일제는 조선에서 발생하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타파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발견은 일제로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간송은 문화적 민족주의의 대명사였고 김태준 역시 일제로서는 위험하기 그지없는 사회주의자였다. 이 둘이 만난다는 것은 너무 눈에 띄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송은 위험을 무릅쓰고 『훈민정음 해례본』을 찾는 데 사활을 걸었다.
눈물겨운 노력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의 실체가 간송의 품으로 왔으며 비밀리에 지켜오다 해방 후 조선어학회 간부들을 불러 한글 연구를 위해 영인본을 만들며 세상에 공개된다. 이 실체는 우리의 언어가 인체 발음기관을 상형화한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백성을 위해서 기획적으로 언어를 창제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일이며, 특히 발음기관을 본떠 만든 최초의 언어로 기록된다. 언어가 그 만든 목적과 유래, 사용법, 그리고 창제의 세계관을 동시에 밝히면서 제작된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진기록으로 남게 되었다. 1962년 12월 해례본은 국보로 지정된다. 그리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재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훈민정음 해례본 - 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히다 (위대한 문화유산, 이진명, 간송미술문화재단)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해례본은 세종때 반포용으로 만든 훈민정음 책을 말합니다.
이 책은 서문과 예의, 해례, 정인지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종어제훈민점음은 세조때 만든 월인석보에 실린 것으로 시작 부분에 "세종어제훈민점음"이라 적혀 있어서 그렇게 부릅니다
세종어제훈민점음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서문과 예의 부분을 한글로 해설해 놓은 것 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민정음 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입니다.
한글이 어떤 원리를 바탕으로 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설명이 실려있습니다.
초간본은 원본으로 여겨지는 해례본이자 최초 발견된 것으로 1940년대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후 간송 전형필이 입수해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보관중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1446년 음력 9월에 반포된 훈민정음(訓民正音) 판본에는 1443년에 창제된 한국의 문자 한글을 공표하는 조선왕조 제4대 임금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의 반포문(頒布文)이 포함되어 있다. 또한 정인지(鄭麟趾)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해설과 용례를 덧붙여 쓴 해설서 해례본(解例本)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판본을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하며, 간송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 즉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책입니더.
국보 제70호며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현재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참조: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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