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이 되기 위해 형제들이 욕심을 내어서 입니다. 왕은 하나입니다. 어쩔 수 없죠, 왕권 강화를 위해서요.
1398년 정도전 일파가 요동 정벌계획을 적극 추진하면서 자신의 마지막 세력 기반인 사병마저 혁파당할 처지에 이릅니다. 이에 평소의 불만을 폭발시켜 제1차 왕자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이로써 정도전과 세자 방석(芳碩) 등을 제거한 뒤 정치적 실권을 장악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변 직후에는 여러 사정을 감안해 세자 추대를 사양하였습니다. 단지 정안공(靖安公)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우군절제사와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를 겸하였습니다. 또한 정사공신(定社功臣)을 논의 결정하여 1등이 되었습니다. 이어 개국공신 1등에도 추가로 올랐습니다.
1399년(정종 1)에 새로 설치된 조례상정도감판사(條例詳定都監判事)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원도와 동북면의 군사를 분령(分領)하였습니다. 1400년 방간(芳幹)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포(朴苞) 등이 주동이 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였습니다.
그 뒤 세자로 책봉되면서 내외의 군사를 통괄하게 되었습니다. 병권을 장악하고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사병을 혁파하고 내외의 군사를 삼군부로 집중시켰습니다. 그리고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고쳐 정무를 담당하게 하였습니다. 중추원을 삼군부로 고치고 군정을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어 1400년 11월 정종의 양위를 받아 등극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