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본부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일본이라는 국가는 우리의 라이벌국가이며 존중하지만
일본이 고대에 임나본부설을 통해서 한반도를
지배핬다는 것은 지나친 억측 아닌가요?
임나본부설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의 야마토모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해 백제, 신라, 가야를 지배하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직접 통치했다는 주장으로 이 연구는 17세기 이래 소위 일본의 국학파들이 이해 주목된 이래, 19세기 후반 일본의 제국주의화와 더불어 문헌고증학자들에의해 부연설명되었고 이후 일선동조론과 더불어 일제의 한국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일본이 내세운 증거는 일본 고대사서인 일본서기의 내용, 일본의 고대 도검류 유물인 칠지도, 광개토대왕비문, 중국의 송서 왜국전 등이있습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신공황후가 보낸 왜군이 369년 한반도에 건너와 7국과 4읍을 점령, 그 후 임나에 일본부가 설치되었으며 562년 임나가 신라에 의해 멸망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신공황후가 정벌한 7국의 지명을 고증한 결과 그곳이 당시 가야지역이었으며 따라서 임나는 가야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주장이나 일본서기의 내용은 여러가지 모순된 사실을 기술하고 있는 등 그 신빙성과 사실성이 의문시 됩니다.
칠지도는 일본의 이소노카미 신궁에 있는 것으로 1873년 신궁의 다이쿠우시인 간 마사모토가 칼에 새겨진 금상감 기법의 글자들을 해석, 고대 도검류 유물인 칠지도가 백제에서 왜 왕실에 헌상했다는 일본서기 신공기 52년기사에 나오는 칠지도라 주장, 이후 칠지도는 백제가 왜 왕실에 하사한것인지, 헌상한 것인지, 단순히 우호의 표시로 증여한 것인지 그 성격을 둘러싸고 한,일 두 나라의 학계에서 첨예한 공방을 벌이는 유물이 됩니다.
1883년 일본 사학자들은 중국 지안에 있는 광개토대왕비문에서 왜이신묘년래도해파백잔라 이위신민을 발견, 이를 왜가 신묘년에 바다를 건너 백제와 신라를 격파하고 신민으로 삼았다고 해석해 일본서기에 나온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한다고 주장, 이에 대해 위당 정인보 이래 남북한 역사학계는 무장을 파까지 한문자으로 끊어 왜 가 아닌 고구려를 주어로 , 고구려가 신묘년에 일본을 무찔렀다고 해석합니다.
임나일본부설은 한일양국 학계에 최대 쟁점이었고 이에 한국측은 일본서기보다 먼저 서술된 고사기에는 임나일본부에 대해 전혀 언급된 바가 없으며 고고학적 근거도 없기 때문에 당시 가야에서 군사적인 활동을 벌인 것은 일본이 아니라 백제라 주장했습니다.
역사 왜곡이 지속되던 중 2001년 일본 후소샤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을 계기로 2002년 한일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한, 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 출범, 지속적인 연구 끝에 2010년 3월 23일 발표한 제2기 최종연구보고서에 4~6세기 당시 야마토정권이 한반도 남부에서 활동하면서 임나일본부를 설치해 지배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일본 교과서의 내용을 폐기하는데 합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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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일본부설-
일본 야마토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진출, 가야에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고 지배했다는 주장으로, 일본의 한국사 왜곡 사례 중 하나입니다. 2010년 3월 한ㆍ일 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사실이 아니며, 용어 자체를 폐기하기로 합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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