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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한라마35
냉철한라마3523.12.26

고대 페르시아에는 노예제도가 있었나요

고대 문명들은 일반적으로 노예 제도로 있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고대 페르시아는 어땠나요 거기서 노예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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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명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어떤 황제의 치세냐에 따라 다르긴 하나 대체로 노예 소유가 불법이었다. 페르세폴리스의 웅장한 궁전 유적들도 노예들이 아닌 임금노동자들의 손으로 지어졌고 고대인들의 사고에서 노예가 되는 것이 당연했던 정복지 주민, 빚쟁이 등의 계층들도 제국의 보호를 받았고 노예가 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았다.

    고대 로마나 대항해시대 신대륙 플렌테이션에 가려져서 그렇지 이 쪽도 만만치는 않았다. 중세 때 노예 수요가 중동으로 집중되었다는데 있다. 중동의 노예무역이 매우 알려진 데에는 노예의 출신 및 처우가 매우 다양했다는 것도 한몫한다. 고대 로마와 마찬가지로 노예의 처우도 극과 극을 달렸는데 글을 읽고 쓸 줄 알고 말을 탈 줄 아는 노예의 경우 도심 2~3층짜리 건물 한 채 수준의 가격이 매겨져서 서민보다 나은 대접을 받은 받았다. 튀르크계 군인 노예의 경우 운이 좋은 경우 합법적으로 왕위에 오를 수도 있었으나 흑인 노예의 경우 운이 나쁘면 뙤약볕 아래 모기가 들끓는 늪지대를 개간하는 극한 작업을 맡았다. 현 이라크에 위치했던 압바스 왕조에서 흑인 노예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 적도 있을 정도다.

    역사적으로 흑인 노예무역에 열을 올린 사람들 역시 유럽인이 아니라 아랍인, 페르시아인들이었다. 북아프리카 외에도 중근동 역시 인도양을 중심으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에티오피아, 말리 등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와 부족들은 고대시대 때부터 아랍 상인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이는 근대까지 이어졌으며 아랍에 대한 아프리카의 주요 수출품은 상아나 황금 외에도 약탈로 노획한 노예였다.

    고대 쿠시 왕국이 정기적으로 노예를 상아와 함께 페르시아에 조공으로 바친 것을 최초로 본다. 아랍인들은 흑인들을 열등하게 여기는 경향이 심각한데 18세기 오만 제국의 경우 흑인 노예 20~50명의 시세 가격이 전투용 말 한 마리 가격과 맞먹었다. 유명한 아라비안 나이트를 비롯한 중동 문학에서 흑인은 추악하고 우매하게 묘사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이슬람 문화권에서 노예들 중 흑인 남성들에 대해서 성욕이 과해 일을 할 수 없는 존재로 간주하여 생식권을 박탈하고 예외없이 거세를 시켜버렸기 때문에 흑인 노예의 자손들은 흑인 여성 노예로부터 태어난 후손들을 제외하면 극히 드물다고 한다. 아프리카男을 노예로 삼고 거세한 아랍인들한테 카다피가 사과하기도 했다.

    근세 이란에서 발흥한 사파비 제국의 경우 오스만 제국의 데브시르메 제도를 모방하여 군인 대부분을 캅카스 지역에서 납치한 혹은 투항한 조지아인으로 채웠는데 이는 사파비 제국 초창기 종파 차이 문제로 각지에서 반란이 빈발하여 믿을만한 세력이 이들 노예병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믿었던 아르메니아인이나 체르케스인, 조지아인을 강제로 이슬람 시아파로 개종시켜 순니파 봉기군들을 진압하도록 활용한 것인데, 어차피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요새에서 고립된 노예병들은 어쩔 수 없이 현지 주민들의 반란을 진압할 수 밖에 없었다. 조지아인 남성이 군인으로 끌려갔다면 조지아인 여성은 술탄의 하렘으로 끌려갔다. 하렘의 후궁을 납치한 기독교인으로 채우는 관습은 사파비 제국의 후신 카자르 왕조로도 이어졌다. 1829년 당시 테헤란의 주 페르시아 러시아 대사관에서 아르메니아인 노예들을 해방하고 구출한 일을 두고 이란인 군중들이 샤한샤를 모욕했다고 여겨 폭동을 일으키고 습격하였는데, 이 사건으로 문인으로도 유명했던 러시아 대사 알렉산드르 그리보예도프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러한 경향은 근대에도 이어지는데 특히 이들 아랍 국가 중 오만 제국은 당시 포르투갈 왕국, 스페인 제국, 다호메이 왕국 과 함께 잔인하고 악랄한 제국주의자 노예 상인으로 유명했다. 오만 제국 치하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과 바가모요, 잔지바르는 세계 최대의 노예 무역항이었다.

    더욱이 아랍 국가들에서 아랍 흑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은 현재진행형으로 심각하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흑인 국가들은 자기 나라들을 식민지배했던 유럽계 백인 못지않게 아랍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못하다.

    특히 차드나 말리, 니제르, 세네갈, 탄자니아, 케냐 등 과거 아랍인들에게 침략, 식민지배를 받았거나 전쟁을 겪었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흑인 국가들의 사람들에게 이집트나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모로코같은 북아프리카 아랍 국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면 바로 그것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아니다. 라고 바로 욕부터 튀어나오거나 나쁘게 여길 정도이다.

    이집트 남부와 수단에 흑인 아랍인과 모리타니인은 누비아인과 서아프리카 흑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아랍어로 모국어로 수용한 경우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이라크, 오만에서는 흑인 노예의 후손도 있으며, 무함마드도 한창 박해를 받았을 때 같이 탄압을 받았던 에티오피아로 신도들을 내보낸 것도 있기도 하다.

    이슬람권은 세계에서 가장 뒤늦게 노예제를 폐지시킨 지역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여러 국가에서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노예를 부리고 있었다. 극단주의자들은 다시 부활시키자고 하고 테러단체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나 보코 하람 등은 실제로 노예제를 부활시켰다.

    그리고 아프리카엔 이슬람이 발흥하기 이전에도 흑인노예 무역루트가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평등과 평화를 약속한 종교가 뻔뻔하게 똑같이 악랄한 노예 장사를 했다는 점, 그리고 그게 현대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기독교의 노예무역과 마찬가지로 정상참작의 여지는 없다.

    여담으로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에 동원된 노예는 노예치고 후한 대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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