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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양241
빼어난양24123.05.31

1300년대 중세유럽의 공포였던 페스트의 시초는 어디서 발생되고 원인이 무엇인가요?

1300년대 페스트가 발병되면서 급속도로 전 유럽으로 퍼져서 엄청나게 많은 인구가 죽엇다고 들었는데요.

이 페스트의 시초는 어느지역이고 그 원인이 무엇이고 어떻게 급속도로 퍼져나간건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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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질환은 1347년부터 1351년 사이, 약 3년 동안 2천만 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습니다. 흑사병은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후 이 질환은 중앙아시아의 타슈켄트 지역을 건너 흑해, 크림 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서울아산병원


  • 안녕하세요. 이주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래 페스트(흑사병)는 중국 남서부 윈난 성에 사는 소수민족의 풍토병이었다가 몽골군의 윈난 성 침략으로 타지에도 널리 퍼졌다는 주장과, 혹은 14세기 중반에 중국 남부에서 일어난 대지진 때 희생자들을 제대로 파묻지 않은 결과, 시체를 뜯어먹은 쥐들에 의해 야기되었다는 주장 등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이유로 당시 몽골군에 점령당한 중국에서도 상당히 많은 희생자들을 발생시켰다고 합니다. 다만 이 시기에 중국사람들이 떼죽음을 당한 이유로 "몽골군이 학살해서"라는 쪽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페스트이 원인이라는 생각은 잘 안 하게 된 것이죠.

    이렇게 발생한 페스트는 당시 몽골 제국이 만든 무역로라든가 원정 나가는 부대를 통해 서쪽으로 퍼졌습니다. 그리고 흑해의 도시 카파에까지 이르렀죠. 1340년대에 몽골군의 공격을 받은 카파 시는 마침 항구도시였기에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몽골군을 상대로 어느 정도 잘 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몽골군은 철수하면서 카파 성 내에 페스트으로 죽은 자기네 병사들의 시체를 투석기로 쏴넣었습니다. 이로부터 얼마 뒤, 카파 시에 무역을 하러 왔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인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상선들이 자기네 나라로 귀국했습니다.

    그 뒤 페스트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노바와 베네치아는 그 당시 후추 등 향신료와 비단 등 동방의 물건들을 카파 같은 동쪽 도시들에서 사다가 서유럽에 팔아서 큰 이익을 얻던 나라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판 물건과 함께 페스트균도 수레에 실린 채 고대 로마 때 유럽 전역에 건설되었으며 이 당시에도 잘 쓰이던 도로망을 따라 퍼져나갔습니다.

    기실 19세기 중반에 루이 파스퇴르 박사가 세균을 발견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에서는 질병의 원인을 "피가 이상해져서", "공기가 더러워서" 혹은 "악마의 장난" 같은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당시 의사들마저도 페스트 환자를 치료하러 나간다면서 "향료를 채워넣은 마스크"만 하고서 왕진을 가거나 환자를 봤을 정도입니다. 즉, 쥐가 페스트을 퍼뜨린다든가, 알코올이 듬뿍 든 독한 술로 소독한다든가 하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당시 기독교는 목욕 문화를 타락의 극치라고 봤기 때문에 로마 시대의 목욕탕마저 없애버렸을 정도였죠. 그래서 몸을 거의 씻지 않다 보니 병에 더욱 잘 걸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시체가 너무 많아 다 파묻을 수 없다는 이유로 시체를 방치하거나, 도랑이나 큰 구덩이에 대충 버리기 일쑤였습니다. 결국, 윈난 성 등에서 벌어진 일이 여기서도 또 벌어진 것이죠.

    페스트는 유럽에서 몇 번의 혹독한 겨울을 거치면서 균이 사멸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도 면역력이 생겨서인지 몇 년 뒤에는 잠잠해지기는 했습니다. 이 당시 몇몇 사람들이 "어쩐지 쥐가 원인인 것 같다"고 판단했고(이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후일 예언가로 더 잘 알려질 청년의사 미셸 드 노스트라다무스였습니다), 그래서 쥐를 조심하기 시작한 것도 원인이었고요. 뭐, 이 덕에 쥐를 열심히 잡기에 이르렀고(그 전에는 고양이가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편견이 퍼진 바람에 고양이를 미워하여 보는 족족 죽이다 보니 쥐판이 벌어졌고 그래서 페스트이 더 잘 퍼졌다고도 합니다), 아울러 로마 시대부터 유행했던 별미인 "산쥐의 고기"마저 더 이상 안 먹게 되었을 정도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