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광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박헌영은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뛰어난 공산주의 사상가이며 지도자였습니다. 이때 북한에는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의 종파 역시 만았습니다. 그중에 김일성은 만주파의 수장이었으며, 박헌영은 국내파중에서도 남조선 노동당의 수장이었습니다.
당시 북한은 한명이 지도하는 유일 지도체계가 아닌, 여러 지도자가 함께 지도하는 체계였는데, 박헌영은 김일성보다 북한의 지도자에 어울린다고 평가받던 사람이었습니다. 박헌영은 조선의 레닌이라고 불릴정도로 김일성과 계속해서 부딪칠수밖에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김일성이 박헌영을 죽인 이유는 김일성 자신이 소련과 중국을 설득해 남친을 했지만,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그 책임으로 쫓겨날수 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와중에, 박헌영이 주장한 빨치산 게릴라 작전을 펼칠 부대를 남파했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이 작전은 박헌영의 큰 약점이 되었고, 그의 정치 기반도 흔들리게 됩니다.
이로인해, 김일성은 정치 공작을 통해 박헌영에게 미제 스파이, 반당 종파분자라는 혐의를 쒸웠고, 결국 1953년 3월에 체포됩니다. 55년 12월 정권 전복음모, 반국가적 간첩테러 및 선전 선동행위를 죄목으로 사형과 전재산 몰수를 받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