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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문어80
조용한문어8023.12.11

명종 재위 시절 을묘왜변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을묘왜변은 생소한데요.

명나라 시대의 왕직 해적단에서 일으켰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왕직은 동양의 해적왕이었다고 하는데 약탈하러 조선에 온게 을묘왜변인가요?

조선에서는 이를 누가 진압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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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왕직은 명나라에서 나온 해적으로 을묘왜변은 1380년 경 조선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왕직은 명나라의 지방관료 출신이나 명나라가 위기에 처하면서 이에 참전해 해적으로 전향합니다. 을묘왜변은 왕직이 이끄는 해적단이 조선의 서해안 지역을 습격하여 거주민들을 납치하고 동포들을 약탈하는 사건으로 조선은 이에 대응하여 군대를 동원해 을묘왜변을 진압합니다.

    이때 조선의 성종이 왕직을 소탕하기 위해 세력을 통일해 나서서 성동적으로 을묘왜변을 진압, 성종은 이 공적으로 인해 덕수궁을 선립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돈화문을 세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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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묘왜변 또는 달량왜변은 1555년(명종 10년) 조선 명종 때 일어난 것으로 왜구가 70여척의 배로 전라남도 영암 강진 진도 일대에 침입하여 보루를 불태우고 난동을 부린 사건입니다. 이를 막던 전라병사 원적과 장흥부사 한온 등은 전사하고 영암부사 이덕견은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에 조선 정부는 이준경을 도순찰사로 김경석 남치근을 방어사로 삼아 왜구들을 토벌하여 영암에서 크게 무찔렀습니다. 왜구가 물러간 뒤 쓰씨마도주는 을묘왜변에 가담한 왜구들의 목을 베어 사죄하고 세견선의 부활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이를 수릭하여 세견선 5척을 허락하였고 임진왜란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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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묘왜변은 왜구의 습격입니다. 위 을묘왜변은 나주를 거쳐서 북상하려던 왜구는 이흠례 등에 의하여 격퇴당하였고 추후 조정에서는 호조판서 이준경을 도순찰사, 김경석(金慶錫)·남치훈(南致勳)을 방어사로 임명하고 전주부윤 이윤경을 파견하여, 영암에서 적을 크게 파하여 그들을 몰아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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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때 계해약조로 삼포를 통해 제한된 통상을 하용했으나 삼포왜란 등으로 난동을 부릴 때마다 세견선을 제한하였습니다. 그런데 통제에 대해 불만을 품은 왜구는 1555년(명종 10) 배 70여 척으로 전라남도 연안지방을 습격하였습니다.

    왕직은 명나라 사람으로 동아시아 일대 거대 무장 해상 집단의 수령이며, 아울러 일본 히젠 앞바다에 위치한 히라도섬(平戶島, 현재 나가사키현 소속)을 기지로 삼아 해상 무역에 종사하였습니다. 가정31년(1552), 복건성 해적 수령 진사반세력을 규합하고 히라도에서 "송(宋)"이라는 국호를 정하고 '휘왕(徽王)'이라 칭하였였습니다. 당시 해적들 중에 왕직의 통제를 받지 않는자는 살아가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명 해안에 출몰한 왜구 대부분은 중국 연해 주민들이며, 상인이나 일반 백성이 해적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을묘왜란 때 왜구들도 왕직 세력일 가능성도 있지만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1555년(가정 34년) 왜구가 명 남부를 노략질하여 80일간 난동을 불렸습니다.명 조정이 호종헌(胡宗憲)이라는 인물을 절강성 순무로 보내면서 정왜총독(征倭總督)으로 왕직을 계략으로 체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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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555년(명종 10) 10월 왜구의 배 70여 척이 전라남도 해안가를 습격하여 달량성, 어란포, 진도, 남도등을 점령하여 야탈하고 10진을 함락시켰습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준경, 이윤경 등에게 군사를 보내 지원하게 했습니다.

    원군이 도착하자 전주부윤 이윤경(李潤慶)이 군사를 이끌고 영암으로 가서 남치훈군사와 합세하여, 영암 해변에서 왜구를 격파하여 승리하였다. 왜구는 퇴각하는 길에 녹도를 습격한 데 이어, 제주도를 습격했으나, 상륙한 왜구를 제주목사 김수문이 군사를 이끌고 토벌하였습니다.

    왜구라고는 하나 꼭 일본인만이 아니라고 많은 중국인들이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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