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중에서 가장 많은 부를 축적한 매국노는 윤덕영이었는데 그는 일본으로부터 많은 재산을 얻고 작위도 받았는데도 창씨개명은 반대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9년 창씨개명을 놓고 해평 윤씨 문중 종친회가 열렸을 때 강력하게 창씨개명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윤치호에 의하면 그의 자존심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윤덕영은 1925년에는 조선 총독부 중추원 고문, 1940년 사망 직전에는 중추원 부의장에 임명되었다고 합니다. 1935년 총독부가 편찬한 < 조선공로자 명감>에 조선인 공로자 353명 중 한 명으로 수록되어 있다고 합니다.이미 1939녀에 창씨 개명을 해놓고 해평 윤씨 무종 종친회가 열렸을 때 강력하게 창씨 개명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윤치호에 의하면 그의 자존심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라 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