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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고요한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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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625 전쟁에서 인해전술을 어떻게 펼친건가요?

중국은 북한을 도와 625 때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려고 했는데요. 이때 우리가 압록강 전선까지 갔는데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펼쳐서 후퇴했지 않습니까. 거대한 전력을 그냥 밀고 들어온건가요?

4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아하마스터

    아하마스터

    안녕하세요.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대해 궁금하시군요. 당시 중공군은 단순히 머릿수로만 밀어붙인 것이 아니라 심리전과 야간 기습을 결합한 독특한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중공군은 주로 낮보다는 밤을 이용해 은밀하게 이동한 뒤 어둠 속에서 꽹과리, 북, 피리 소리를 내며 아군의 공포심을 극대화하는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무기가 부족한 병사들은 앞서 전사한 동료의 총을 주워 가며 돌진하기도 했고 심지어 죽창이나 곡괭이 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들고 덤비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무모해 보이는 공세로 인해 중공군은 늦게 참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약 20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미군 사상자인 17만 명보다도 많은 숫자였죠. 거대한 병력을 한꺼번에 투입해 아군의 방어선을 무너뜨렸던 이 전략은 우리 역사에 뼈아픈 후퇴의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도 유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채택된 답변
  • 중공군의 병사들은 주로 인해 전술 전략을 사용 할 시에 낮이 아닌 밤을 이용 했다고 합니다. 어둠 속에서 울리는 북소리, 피리 소리, 고함소리 등을 이용해서 심리전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소총 한 자루 없이 전진하기도 했고 앞에서 전사한 병사가 떨어뜨린 총을 주워가며 싸우기도 하면서 후방에서는 탄약도 없이 돌진해야 하는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병력은 아예 죽창, 곡괭이등 원시적인 무기를 가지고 덤비기도 했다고 할 정도 였다고 합니다. 한국 전쟁 당시 중공군의 사상자는 약 20만명 이였다고 합니다. 늦게 참전 했음에도 사상자가 미군의 17만명 보다 더 많은 숫자 였습니다.

  • 중공군의 인해전술은 무작정 머릿수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통한 기습적인 포위 전술에 가까웠습니다. 중공군은 아군보다 화력이 약하다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주로 밤을 이용했습니다. 야간에 산등성이를 타고 몰래 이동해 아군의 방어선 중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낸 뒤 그 지점에만 압도적인 병력을 집중시켜 구멍을 냈습니다.

    일단 방어선 한 곳이 뚫리면 중공군은 그 틈으로 쏟아져 들어와 아군 부대의 뒤를 차단하고 완전히 에워싸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이때 꽹과리나 나팔을 불어 아군에게 심리적 공포를 심어주었는데 어둠 속에서 사방이 포위되었다고 느끼게 만드는 효과가 컸습니다.

    즉, 전체적인 병력 수도 많았지만 그보다는 아군이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아군보다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인해전술의 본질입니다. 아군은 적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상태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병력에 압도당해 결국 1.4 후퇴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한국 전쟁 6.25전쟁때 중국이 수백만명의 병력을 투입하였는데

    총칼과 징 꾕가리 등으로 큰소리를 내며 우리 병사들을 위축시키고

    한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져도 그 사람을 밟고 다시 뛰어들고 말그대로

    인구수 물량으로 덮쳐버린 인해전술입니다.

    이때 한국전쟁에서 북한군과 중공군의 사상자 합계가 80만명이 넘는다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