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궁화가 국화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에 관해서는 알수 없으나, 신라 효공왕 때와 고려 예종때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 우리나라를 근화향 이라 표현한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있었고, 일제의 조선통독부 고등경찰사건에
고려조시대에는 전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상, 의학상에 진중한 대우를 받았는데 일본의 사쿠라,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피어있다가 이조에 들어서 왕실화를 이화로 정하매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 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든 것인데 20세기의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매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 국민정신의 통일 진작에 노력하여,,,
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무궁화가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