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방대한 승정원일기가 전산화되고 세자의 질병을 상세히 기록한 심양일기와 시강원 스승들이 작성한 소현세자의 학창생활, 즉, 2만 페이지에 달하는 소현동궁일기의 국역과 출간이 이뤄진 시점에 당시 정세를 단편적으로나마 훨씬 자세히 엿볼수 있게 되어 의학적 관점에서의 연구도 더해졌으며 이후 독살을 단언할수 없게 되었고 대신 다른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평소 지병이 있던 소현세자가 17세기 한의학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지병의 급성 악화로 사망했고 당시 인조는 그런 상황을 철저하게 이용했다는 것인데 다만, 소현세자의 돌연사를 유발한 그 지병이 무엇이었는지 규명하는 것 역시 17세기 의학 기록의 한계로 추론의 영역에 머물게 되었고, 워낙 인조, 혹은 소용 조씨가 소현세자를 숙청하고도 남을 맥락과 앞뒤 정황이 있다보니 독살, 타살설 역시 정황상, 그리고 대중적으로는 설득력을 가진 상태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