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이이의 학통을 계승한 서인, 노론세력이 조선후기 정치의 주도세력이 되면서, 임진왜란을 미리 예견한 이이의 탁월한 능력을 강조하기 위해 널리 선전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희생양이 필요하였고, 동인의 영수 유성룡은 이이의 탁견을 무시한 무능한 정치인으로 격화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당파가 우선이고 국익은 뒷전인터라 이이의 이러한 십만 양병설은 누구한테도 설득력이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