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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매미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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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은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전에 율곡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는데 이를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임진왜란때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학창시절에 교과서에 있었는데 현재 역사상 사실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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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율곡 이이가 주장한 십만양병설은 실제로 시행되었는지 그 기록을 찾아볼 수는 없다고 합니다.

    십만양병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번은 경연에서, "미리 10만 명을 양성하여 급한 일이 있을 때에 대비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10년을 지나지 아니하여 토담이 무너지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하니 정승 유성룡이 말하기를, "일이 없이 군대를

    양성하는 것은 화근을 만드는 것입니다"하였다. 그때에 난리가 없은 지가 오래되어 편안한 것만 좋아하여서 경연에 있던 신하들이 모두, "선생이 잘못한 것이다"하니, 선생이 나와서 유성룡에게 말하기를, "나라 형세가 위태하기가 달걀을 쌓아 놓은 것 같은데, 시속(時俗)의 선비는 이때 어떻게 할 것을 모르니, 다른 사람이야 진실로 기대할 것이 없지만 그대가 또한 이러한 말을 하는다"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에 유정승이 조정에서 누구에거 말하기를, "지금 와서 보면 문성공(이이)은 참으로 성인이다. 만약 그 말대로 하였으면 나라 일이 어찌 이렇게 되었겠는가. 또 그가 전후로 계획한 것이 어떤 사람은 잘못이라고 하였지만 지금은 모두 꼭꼭 들어맞아서 참으로 따라갈 수가 없으니, 만약 율곡이 살아 있다면 반드시 능히 오늘날을 타개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하였으니, 참으로 1백 년을 기다리지 않고 안다는 것이다.

    [출처] 이이의 '십만양병설'|작성자 쿨한언니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선조수정실록에 실린 십만양병설은 실제 선조실록에는 이이가 선조에게 여러가지 국방과 세제개혁에 대한 의견을 개진한 기록인 시무 육조는 있으나 십만이라는 구체적 숫자를 언급한 기척은 없으며 이는 서인들이 이이를 높이기 위해 짜맞추어 만든 기록일 가능성이있습니다.

    이이가 병조판서로 있던 1538년 올린 시무 육조에는 양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십만이라는 구체적 언급은 없고 이이는 양병은 양민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면서 우선 양민부터 하고 나서 논의할 일입니다. 라고 주장합니다.

    이는 중국의 삼국시대 때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통용되던 삼국 정립설과 같이 당시에 통용되던 의견들과 비슷합니다.

  • 십만양병설은 이이 선생이 ‘10만명의 군병을 길러 위급한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단적으로 조작이라고 하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역사의 위조를 파헤친 책에서도 자세히 비평된 내용입니다.

  •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율곡이이의 십만양병설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의견이 조금 나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oreanhistory.org/37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