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300여 명의 고관대작들이 제주로 와서 한맺힌 세월을 보내야 했습니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당한 광해군을 비롯하여 비운의 죽음을 당한 소현세자의 세 아들과 손자들이 그들입니다. 보우스님 정온 송시열 김정희 최익현 그리고 한말의 거물정객 김윤식과 박영효도 제주로 유배를 왔었습니다.
조선 시대의 유배는 죄의 중과에 따라 유배지가 정해지는 형벌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죄가 무거우면 한양(서울)에서 가장 먼 변방이 유배지로 결정되었는데, 이 때문에 유배지로 가장 많이 선택되었던 곳이 북쪽으로는 함경도 경원, 남쪽으로는 서남해안의 인근 섬이었습니다.
제주도는 사형을 겨우 면한 중죄인이 가는 곳으로 배를 타고 유배를 떠나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고 가는 길이었으니 그 힘든 여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