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의 정읍발언은 어떤내용이 담겨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전라북도 정읍에서 발언을 하였는데 이것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었나요? 이 발언으로 남북이 갈라지는 이유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승만의 정읍발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미ㆍ소 공동 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
즉, 이 정읍발언의 핵심은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습니다.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6.6.3일 이승만의 정읍발언을 통해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합니다. 1945.12.28일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미소공동위원회에 의한 5개년 신탁통치가 결정되자 국내에서는 찬탁과 반탁으로 나뉘어 극단적인 대립을 합니다. 미군정의 요청으로 좌우합작으로 진행되었지만 진전이 없자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대안으로 제시된 것입니다. 남한만의 단독선거론은 1946.4.6일 언론을 통해 제기되었습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지연되자 미군정이 이승만을 주석으로 하는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본국에 제의했다는 것입니다. 4.7일 미국 국무부가 부인하여 수면아래로 가라앉았지만 불가피성이 계속 제기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1차 미소공동위원회의 교섭이 결렬되자 다시 단독정부론이 재차 부각되었습니다. 이승만은 1946.4.15일부터 지방순회를 하고 있었는데 6.3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니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하여 38도 이북의 소련을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6.5일 전주 6.25일 개성 방 문에서도 거론됩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승만의 정읍 발언이 남한 단독정부론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6년 미, 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자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이승만의 발언입니다.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미,소 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니 여러분도 결심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발언의 핵심은 남한만이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으로, 이 발언으로 남북 분단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한정현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읍 발언(井邑發言)은 미군정기에 이승만이 각지를 순회하는 도중 1946년 6월 3일에 전북 정읍에서 '남측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할 것'을 강조하는 내용의 발언을 한 것을 말합니다.
1947년 11월 24일, 김구는 '남측만의 단독선거는 국토 양분의 비극을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는데 그것이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전라도 정읍에서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일.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에 따라 개최된 미·소공동위원회 1차회의가 결렬되고 좌우합작운동이 전개 될 무렵, 미군정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보도되었다. 그 후 지방여행에 나선 이승만은 정읍에서 「무기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세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공론에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승만은 이 발언을 한 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본격적으로 나섰고, 그해 12월부터 47년 4월까지 미국에 건너가 남한 단독정부수립을 촉구하는 외교활동을 벌이고 돌아왔다.
출처 : 한국근현대사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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