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와 후추는 어떤 관련이 있나요?
대항해시대는 후추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하던데요
대항해시대와 후추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요?
후추는 유럽에서 재배가 안되는 것이였나요?
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의 주변국들은 영국을 놀리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전 유럽에서 요리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가 무너진 이후에 그 문화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한데다 이후 금욕적인 기독교 문화로 의도적으로 요리에 맛을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냉장 시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 당시 존재하던 요리라고는 소금에 절인 고기와 말린 생선 정도가 전부다. 가축은 10월에 도살되어 다음 해 봄까지 저장해서 먹었기에 아무리 소금에 절여도 금세 노린내가 나고 부패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참고 먹기 위해서는 냄새와 맛을 위장시킬 필요가 있었는데 그래서 유럽인들에게 향신료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서민들은 대부분 허브와 함께 고기를 먹었고 귀족들은 그보다 맛이 좋은 후추를 먹었다. 후추의 원산지는 아랍의 여러 지방과 인도였고 유럽의 귀족들은 비잔틴 제국을 통해 후추를 수입해 왔다.
그러던 와중 비잔틴 제국이 무너지자 후추 값이 폭등했다. 안 그래도 상당한 가치가 있던 후추였는데 값이 더 오른 것이다. 후추는 교환의 매개물로 귀금속 대신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참금, 세금, 집세를 후추로 계산했고 지주들은 화폐보다 가격 안정성을 지닌 후추로 지대를 받는 것을 더 선호했다.
그러던 후추가 이슬람 세력에 의해 공급이 끊겨 가격이 오른 것이다. 후추 한 주먹은 노예 10명의 가격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이런 후추는 전쟁의 계기 중 하나로 작용하기도 했다. 십자군 전쟁을 포함한 기독교 국가와 이슬람 국가와의 전쟁의 중심에는 후추를 포함한 향신료가 있었다. 후추는 음식을 먹기 위해 필요하기도 했지만 화폐처럼 사용되기도 했기에 후추의 공급이 끊기는 것은 심각한 경제 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때문에 ‘고작 양념 하나’가 아니었다.
계속된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세력은 만만하지 않았고 각국은 이슬람을 거치지 않고 인도에서 후추를 사 올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이전까지 지중해를 중심으로 근거리 항로만 이용하던 유럽의 항해 기술로 인도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항해술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아직까지 원거리 항해는 쉽지 않았다
몇 달간 육지를 보지 못한 채 떠돌다 보니 빵은 돌처럼 딱딱해지고 물은 썩어버렸다. 바람에 의존해 항해하는 범선이었기에 잘못해서 무풍지대라도 들어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항해사 바스코 다 가마가 이끄는 포르투갈 선단이 1498년 인도의 고아에 입항하는데 성공했고 향신료를 잔뜩 싣고 리스본으로 돌아왔다. 유럽인들은 이제 이슬람의 횡포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가격으로 후추를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이후로 향신료 무역은 포르투갈이 독점하게 되고 전 유럽의 돈은 리스본으로 모여들었다. 다른 나라들은 이를 갈면서 독자적으로 항로를 개척하려 힘을 쓰게 되는데 그로 인해 대항해시대가 열린 것이다. 각 나라의 항로 개척을 통해 발견된 길을 스파이스 루트(spice route)라고 부른다. 포르투갈이 인도까지 가는 항로를 발견해 후추 무역을 독점한 것만으로 순식간에 강대국으로 거듭났던 것을 보면 ‘후추를 얻는 자 세계를 얻는다’라고 할 정도로 후추는 많은 의미를 가진 향신료였다.
대항해시대 혹은 후추의 시대, 그는 어떻게든 후추가 지천에 널린 인도의 항로를 찾아 인생 역전을 꾀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인도까지 항해를 시도할 만한 함대도 선원도 없었다. 그저 계획만 가지고 있었던 그는 포르투갈의 조앙 2세를 비롯한 각국의 왕들에게 접촉해 지원을 요청했지만 허술한 계획과 과도한 요구로 가는 곳마다 번번이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러다 마침내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게 3척의 함선과 120명의 선원(전부 죄수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면 이사벨라 역시 콜럼버스에게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을 지원받게 되어 후추의 성지 인도를 향해 떠난다.
당초의 계획대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인도에 도달했다면 그는 분명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럽과 인도 사이에는 다행히 아메리카 대륙이 존재했고 운 좋게 살아남은 그들 일행은 아메리카 대륙에 상륙하게 된다.
콜럼버스는 그곳을 인도로 알고 상륙했고 돌아가서도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그는 그곳에서 후추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원주민들이 금붙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가진 후 30명의 부하를 남겨둔 채 돌아온 것이다.
후추의 원산지 루트를 뚫으려 했던 콜럼버스는 후추가 아니더라도 뭔가 가치 있는 것을 가져와야만 했다. 그는 이 손실을 금으로 채우려 했으나 원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금은 기대만큼 많지 않았다.
출처 : 사물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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