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권의 쇄국정책 외에 어떠한 업적을 남겼나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우리나라가 늦게 개방되었니, 문화를 지켰니 라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요,
쇄국정책을 기점으로 흥선대원군의 업적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박일권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은 19세기 후반 한국의 강력한 섭정이자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조선 왕조의 근대화와 개혁에 있어 탁월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업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개혁과 근대화: 흥선 대원군은 조선 왕조를 근대화하고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교육, 과학 및 기술을 장려하고 서구 혁신을 채택하여 경제와 군사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유교의 회복: 흥선 대원군은 유교를 적극 옹호하여 한국에서 유교의 영향력과 위신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은 무너져가는 조선을 다시 바로 세우는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그는 세도가문의 국정농단 속 생존을 위해 상갓집 개라고 불리면서 인내하였습니다. 기회가 왔을 때 권력을 잡아 무너진 기강을 다시 세우는 작업을 했습니다.
노론 일부가문이 왕실과 외척을 맺고 전횡하는 폐를 없앴습니다. 고종의 비를 그래서 한이한 가문으로 민씨 가문을 택했습니다. 또한 붕당의 파벌싸움을 없애 일종의 탕평책을 펼쳤습니다. 통치질서를 정비하기 위해 대전회통을 간행하였습니다. 또한 붕당의 온상인 서원을 대거 혁파히였습니다.
조세제도도 정비하였습니다. 군정의 문란을 개혁하기 위해 호포제를 시행하여 양반들에게도 군포를 걷었습니다 . 은결을 찾아내 전세를 확보하였습니다. 또한 무너진 왕실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복궁을 중건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 재정이 많이 들어갔고 양반의 묘지림 등을 벌목해 원성을 샀습니다. 또한 농민부역에 따른 문제와 당백전이라는 상평통보의 백배에 해당하는 고액 화폐를 간행해 경복궁 중건에 사용했는데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이로 인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전통적 개혁자이자 마지막 정상적인 권력 행사자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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