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은 광해군 시기에 대북파와 연계하여 활동했으며, 광해군을 도와 인목대비 폐모론에 적극 가담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급진적인 개혁 사상과 행동은은 이이첨, 한찬남 등 견제 세력을 키웠습니다. 1618년, 당시 남대문에 "포악한 임금을 벌하러 하남 대장군이 온다"라는 벽서가 붙었고, 이 벽서를 붙인 사람이 허균의 심복으로 밝혀지면서 허균은 역적으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반역 모의 혐의로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고, 결국 능지처참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