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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꿈을 펼쳐라
네 꿈을 펼쳐라23.05.08

고려인이면서 중국에 건너가 황후가 된 기황후는 왕족인가요?

고려인이면서 중국에 건너가 황후가 된 기황후는 왕족인가요?

드라마를 볼때는 몰랐는데 역사이야기를 새롭게 읽으면서 알았습니다.

기황후가 고려인이었네요.

중국에서 황후까지 되다니... 고려 왕족인가요? 성이 기씨라면 왕족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황후까지 가능했는지 궁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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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3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5.08
    1333년(충숙왕 복위 2)에 원나라의 휘정원(徽政院)에 있던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高龍普)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어 순제의 총애를 받게 되자 정후인 다나시리[答納失里]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1335년에 다나시리의 일족이 축출되자 황후로 책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바엔[伯顔] 등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1339년 황자 아이유시리다라[愛猶識理達臘]를 낳았으며, 이듬해 2월에 바엔세력이 물러나게 되자 4월에 드디어 제2황후로 책봉되었다.


    황후가 된 뒤 곧 반대세력을 몰아내고 휘정원을 자정원(資政院)으로 이름을 바꾸어 이를 배경으로 막대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와 같이, 원나라에서의 세력이 비대해짐에 따라 고려에서도 일족인 기씨(奇氏)의 세력이 기반을 다졌다. 기황후의 오빠인 기철(奇轍) 등은 권세를 휘두르다가 1356년(공민왕 5) 공민왕의 반원개혁 때 주살되기도 하였다. 이에 불만을 품은 기황후는 공민왕을 폐위시키고 충숙왕의 동생 덕흥군(德興君)을 고려왕으로 옹립하기 위해 1364년(공민왕 13) 최유(崔濡)로 하여금 군사 1만으로 고려를 침공케 하였다. 하지만 최유의 군사는 고려의 최영(崔瑩) 장군에게 크게 패주함으로써 덕흥군 고려왕 옹립 계획은 무산되었다.


    1365년에는 전례를 깨뜨리고 정후가 되었으나, 1368년 원나라가 멸망한 뒤에는 행적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황후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혜종은 고려인 공녀 출신 기씨를 새로운 제1황후로 삼으려 하지만 당시 실권자였던 바얀이 몽골족이 아닌 여성을 제1황후로 삼을수없다고 반대해 바얀 후투그를 새로운 제 1황후로 삼았고 1338년 기씨는 혜종의 아들 아유시리다라를 출산하고 바얀이 실각하자 혜종의 국사 사라판이 기씨를 제2황후로 책봉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뒷받침이 없어 고민하던 중 혜종이 부다시리를 폐위하고 추방했는데 당시 부다시리는 휘정원을 관리하고있었고 부다시리를 추방 후 휘정원의 관리를 기황후에게 맡기게 됩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측근인 박부카와 고용보를 이용해 원나라의 실권을 장악, 아유시리다라를 황태자로 책봉받게 하고 고려 출신 여성 권씨와 김씨를 황태자비로 삼았습니다.

    기황후는 제1황후자리를 포기하지 못해 자정원을 숭정원이라 개명하고 바얀 후투그가 생전에 관리한 중정원을 숭정원에 편입시키는 등 세력을 키워 혜종을 압박했고, 결국 혜종은 기황후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1365년 12월 제1황후로 책봉하게 됩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버지는 사후 영안왕과 경왕에 추증된 고려 문신 기자오(奇子敖)이고, 어머니는 익산이씨로 전서 이행검의 딸 이씨이다. 증조모 장흥임씨가 고려 인종의 왕비 공예 왕후의 친정 조카 임경순의 딸이었다고 하니 귀족이였던 것은 분명 한 것 같습니다. 14세 니이에 공녀로 뽑혀 1333년 고려 출신 환관이던 고용보 (高龍普)의 주선으로 원왕실의 궁녀가 되었다가 왕의 총애를 받아 제 왕후까지 된것 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