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30년 전쟁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려주세요
유럽의 30년 전쟁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구교와 신교 간의 전쟁으로 알고 있는데 어떠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618년~ 1648년 독일을 무대로 신교와 구교간에 벌어진 종교전쟁입니다.
제1기(1618~1620) 독일의 신교와 구교 양교도 가의 반목은 1555년에 있던 아우크스부르크화의 이후에 그 엉어리가 가시지 안항 17세기 초 양파의 제후들은 각기 신교 연합과 가톨릭 연맹을 결성해 대립합니다.
이 같은 정확 속에 1617년 가톨릭교도인 페르난디난트 보헤미아의 왕위에 올라 가톨릭 절대 신앙을 강요하려 하자 보헤미아와 오스트리아의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1619년 페르디난트 2세가 황제가 되자 보헤미아인들은 팔츠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를 국왕으로 받들고 이에 대항하여 싸우나 1620년 바이서베르크 싸움에서 패배하여 프리드리히 5세는 네덜란드로 망명하고 보헤미아의 신교도들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제2기(1625~1629) 전부터 독일에 영토적 야심을 가지고있던 덴마크왕 크리스티안 4세는 이를 기화로 영국 및 네덜란드로부터 군자금을 얻어 1625년 신교도군의 총수로 독일에 침입하나 황제군의 장군 벨렌슈타인과 틸리에게 패배하여 1629년 양측은 뤼베크 조약으로 화해합니다. 이에 황제는 배상령을 내려 종교제후의 영지회복과 루터파의 공인을 선포하게 됩니다.
제3기(1630~1635) 이듬해 스웨덴 왕 구스타브 2세가 신교를 옹호하고 프랑스의 후원을 얻어 다시 독일에 침입합니다. 스웨덴군은 황제군을 브라이텐펠트전투에서 격파하고 틸리를 전사시켰으나 1632년 뤼첸전투에서 구스타브 2세도 전사합니다. 이후 스웨덴 군은 전투를 계속하였으나 패배를 거듭하여 1634년 황제군 사령관 발렌슈타인이 모반혐의로 암살되자 1635년 황제와 그리스도교군의 작센 선제후 사이에 프라하 화의가 성립됩니다.
제4기(1635~1648) 프라하의화의 직후 1635년 1631년 이래 배후에서 신교세력을 밀었던 프랑스가 전면에 나서 독일에 출별하고 에스파냐에도 선전을 포고, 스웨덴과 연합전선을 펼칩니다. 전쟁은 일진일퇴의 전황속에 끌어가다 1637년 황제위를 계승한 페르난디난트 3세는 전세의 불리와 국내 제후들이 오랜 전쟁으로 시달려 1641년 종전을 제의합니다.
1644년부터 열린 강화회의는 지지부진하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이 성립되며, 30년간의 종교전쟁이 끝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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