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유비는 왜 제갈량을 삼고초려하였을까요?
삼국지를 보면 하염없이 유비는 쫓기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유비는 관우와 장비와 같은 든든한 장수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갈량을 얻기 위해서
삼고초려하는데 왜 유비는 그랬을까요?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위촉오 삼국시대에 촉의 유비는 인재를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중 한명이 서서입니다. 비범한 지혜에 탄복한 유비는 그를 군사로 임명합니다. 어느 날 서서가 유비에게 말했습니다. 융중이라는 마을에 천하에 보기 드문 선비가 있는데 성은 제갈 이름은 양 자는 공명이라고 하며 세인들은 그를 와룡선생이라고 부릅니다. 주공께선 왜 그를 청해오지 않으십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관우 장비와 함께 세 번을 찾아간 끝에 제갈공명을 군사로 모시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삼고초려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고 그럴정도로 제갈공명은 출중한 인물로 책사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였습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비와 같은 경우에는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기 위하여 그런 것이며 당시에는
유비군에 마땅한 책사라고 볼만한 사람이 없었기에 삼고초려를 한 것입니다.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나요?간단한 별점을 통해 의견을 알려주세요.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정세로 보면 강대한 세력과 수많은 인재를 보유했던 위 나라의 조조가 대업을 이루기에 적합했으나, 반대로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 위해 순욱, 곽가 , 정욱 등의 뛰어난 인재들 속에서 그들보다 두각을 드러내야 빛을 볼수있는 것은 쉬운것이 아니었습니다ㅣ.
실제 제갈량이 승상이 된 후 자신과 동문수학했던 동무들이 위나라에서 중간급 관리직을 하고 있는 것을 알았음에도 아직도 그러한 위치에 밖에 오르지 못하다니 위나라에 얼마나 많은 인재가 있다는 것인가 하며 탄식했다고 전해집니다.
또 인재를 중히 여긴다고 하나 의심이 많고 필요에 따라 잔인한 면모 또한 서슴치않고 보여주는 조조보다 백성들의 신망이 높고 한황실의 부흥과 천하만민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운 유비가 자신의 가치관과 더 부합되었습니다.
강동의 손권의 경우 많은 중신들이 이미 포진되어있었고 손권 스스로 강동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에 신경써 천하를 도모한다는 의지가 부족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유비의 당치 처지가 다른 세력만 못했으나 자신을 중용해 재능을 맘껏 펼치고 뜻을 이룰수 있는 사람으로 유비가 적합하다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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