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정준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늑약의 체결에 동의한 다섯 명의 내각 대신은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 학부대신 이완용,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입니다. 이들은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와의 면담에서 조약문의 문구에 대한 수정안을 제시했고, 이토는 문구 수정안을 제출한 이상 조약에 찬성한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외부대신의 직인이 찍힌 조약 체결 가결안이 회람되었고 여기에 5명의 대신이 기명으로 ‘가(可)’를 썼습니다.
을사늑약 체결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이들은 매국적으로 지칭되었고, 이들의 단죄를 요청하는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쳤습니다. 장지연이 쓴 시일야방성대곡에서도 이들은 왕과 인민을 속이고 나라를 판 매국적으로 호명되었습니다. 1905년 12월 이 5명은 연명으로 상소를 올려 외부대신의 직인이 찍힌 문서가 회람되었을 때 왕이 이 조약에 동의한 것으로 알았다고 항변했고, 대한제국 국호와 인민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습니다. 1906년 3월 12일 공립신문에 「난망자오적(難忘者五賊)」이란 기사가 실린 이후 ‘5적’으로 통칭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들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근택, 권중현, 이완용 등이 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