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때 있었던 예송논쟁이 발생한 진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인가요?
현종때 있었던 예송논쟁 즉,왕이나 왕비가 죽었을 때, 어머니나 시어머니인 대비가 상복을 얼마 동안 입는 것이 알맞은가?이 말도안되는 논쟁이었다고 하는데. 이 사건이 발생한 진짜 결정적 원인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김종호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송논쟁은 예절에 관한 논란으로
조선 후기에 차남으로 왕위에 오른
효종의 정통성과 관련하여 1659년 효종 승하 시와 1674년 효종비(妃)
인선왕후의 훙서 시를 비롯한 총 두 차례에 걸쳐 일어났으며, 이때 인조의
계비 자의대비의 복제가 결정적인
쟁점이 되었기 때문에 복상문제(服喪問題)라고도 부릅니다.
출처:위키백과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효종이 승하했을 때 3년상으로 할 것인지 1년상으로 할 것인지의 예송논쟁이 벌어졌는데 이는 당파싸움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는 서인과 남인들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서인이 득세하고 윤선도 등 남인들은 유배를 가게 되고 이후 효종비의 사후에 1년상이냐 9개월이냐를 두고 역시 2차 예송논쟁이 벌어졌는데 이때는 남인의 의견에 받아들여져서 서인이 몰락하게 됩니다.
안녕하세요. 조형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는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반정으로 즉위한 왕입니다. 즉, 인조는 왕위 정통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선조의 아들들이 살아있는데 인조가 왕이 될 수가 없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삼전도의 굴욕 등으로 인조의 위신은 크게 손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원래 장자인 소현세자가 왕이 되어야 맞는데 그 정통성을 또 부정해버립니다. 그 당시에는 정통성을 중요시하게 생각했는데, 이게 두 번이나 부정되었으니 분노가 극에 달합니다. 효종이 승하하고 현종이 즉위하면서 예송 논쟁이 발생했습니다.
장자가 죽으면 그 어머니는 3년복을 입고, 차자 이하 아들이 죽으면 기년복(1년)을 입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서인은 효종이 소현세자의 동생이므로 기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남인은 효종은 국왕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므로 일반 백성과 다르게 3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