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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침팬지184
외로운침팬지18423.12.03

일제시대공부하다보니 헤이그특사가 나오던데 어떤특사인지 궁금합니다.

일제시대역사 공부를 하다보니 헤이그특사가 나오던데 어떤 특사인지가 궁금합니다. 혹시나 아시는 전문가님 답변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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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6개의 답변이 있어요!
  • 안녕하세요. 박세공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이그 특사란 고종이 1907년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일제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하기 위해 보낸 특사들입니다.

    3인을 보냈는데, 그 3인은 이상설(李相卨), 이준(李儁)과 이위종(李瑋鍾)입니다.

    끝내 회의 참석하지는 못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이그특사사건은 1905년의 을사 늑약을 거치면서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열사와 같은 특사를 파견해 일제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한 외교 활동이지만 결국 일보의 방해로 실패 합니다.


  •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강요되고 고종은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습니다. 거중조정을 근거로 고종의 특서를 헐버트를 통해 미국 대통령에 알리려 했으나 무위가 되었습니다. 그 직후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만국평화화의가 개최된다는 사실을 알고 고종이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보내 을사조약의 부당성과 한국의 독립을 호소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일본과 영국의 방해로 회의장 입장은 불가했으나 여러 나라에 일본의 침략을 알렸습니다. 다만 이를 빌미로 고종이 강제로 퇴위되는 사태를 맞이하죠^^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이그 특사는 1907년 대한제국 황제 고종이 제 2차 한일협약의 부당함과 일본 제국의 침략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비밀리에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2차 만국평화회의에 보낸 3명의 특사들을 망합니다.

    그 3명은 정사 이상설, 부사 이준, 통역관 이위종 이며 , 일제의 특사인 척 연막 작전을 펼친 미국인 호머 헐버트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합세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김기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종이 1907년 네덜란드 수도인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정사에 전 의정부참찬 이상설과 부사에 전 평리원검사 이준 그리고 주로한국공사관 이위종 등 3인을 특사로 파견하여 일제에 의하여 강제 체결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 두권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한 외교활동으로 일명 헤이그밀사사건이라고 불립니다. 일제는 1904년 러일전쟁의 승리로 한국을 병합하기 위해 외교활동을 벌여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열강들이 일제의 한국 침략을 묵인하도록 조처한 뒤 1905년 11월 고종고가 대신들을 위협하여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합니다. 그러나 고종은 이 조약을 인준하지 않고 틈만 있으면 대외에 을사늑약을 반대하는 친서를 보냈습니다. 1906년 6월 평화회의 주창자인 니콜라이 2세가 제2회 만국회의 초청장을 보내오자 고종은 일제의 폭력적 침략을 호소하고자 특사를 보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어렵게 간 특사들은 회의장 입장이 좌절되었고 비공식적 채널인 각국신문기자단의 국제협제에 참석하여 영어에 능통한 이위종의 연설로 한국의 호소를 절규 청중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준도 같은 이유로 모색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분사하는 불행을 맞게 되었습니다.


  • 안녕하세요. 양미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헤이그특사는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개최된 제2회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해 일제에 의해 강제 체결된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한국의 주권 회복을 열강에게 호소한 외교 활동으로 이상설, 이준, 이위종 등이 파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