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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미가지나무
구르미가지나무23.08.20

을사늑약이 체결될때 옥새는 어떻게 가져간것인가요?

우리나라의 가장 가슴아픈 비극의 역사중 하나인 을사늑약..이 을사늑약을 체결할때 나라를 배신한 앞잡이들이 고종황제의 옥새를 가져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일개 벼슬아치들이 한 나라의 옥새를 함부로 가져갈 수 있었던 것일까요?

아무런 저지도 당하지 않았던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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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
2개의 답변이 있어요!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8.20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덕수궁 인근의 중명전, 이토 히로부미는 111년 전 이곳에서 고종에게 을사늑약에 옥새를 찍을 것을 강요했고,

    끝내 고종이 거부하자 멋대로 관인을 찍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했습니다.

    일본의 특명전권대사였던 이토 히로부미와 하야시 곤스케 일본 공사는 중명전을 무장 군인으로 에워싸고 어전회의를 열었지만 고종 황제가 끝내 2차 한일협약서에 옥새를 찍지 않자 농상공부대신 권중현, 학부대신 이완용, 외부대신 박제순, 내부대신 이지용, 군부대신 이근택을 회유해 서명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1907년 고종은 이곳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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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을사 늑약 당시 일본군은 왕궁을 포위하고 대신들과 고종을 겁박해서 억지로 서명 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고종은 어떠한 서명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압에 의한 것이나 늑약 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요. 그래서 이 늑약은 무효가 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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