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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두꺼비124
훈훈한두꺼비12423.02.27

일제시대에 일본은 왜 우리 호랑이를 그렇게 잡아갔나요?

일제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호랑이를 다 잡아가서 우리나라에 남은 호랑이가 없다고 하는데 일본은 왜 집착하듯 호랑이를 남김없이 다 잡아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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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2.27

    안녕하세요. 임지애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본이 호랑이를 잡아간 이유는 바로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어 그 가치가 높을 뿐아니라 조선을 점령했다는 상징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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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승원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본이 조선에서 호랑이를 잡아간 이유는 조선을 점령했다는 상징과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에 호랑이를 사냥한다는 것은 조선을 점령했다는 상징이었을 것이고 일본에서 유명했던 가토 기요마사 이야기처럼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도 그 상징을 잡아 보려한 것이 아닐까.
    어떤 이는 말한다. 조선 초기부터 계속해서 호랑이 포획정책이 이어졌기 때문에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멸절됐다는 것은 일제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이다. 1936년 경성사범학교의 생물 교사인 우에다 츠네카즈가 쓴 글을 보면 답이 나온다.

    옛날 조선에는 호랑이가 매우 많았고 어딜 가나 사람과 가축에 피해를 주는 동물로, 호랑이를 죽여서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것은 지방 관사의 중요한 행정업무 중 하나였다. 지금은 그 수가 매우 적어 북쪽 오지가 아닌 한, 어느 산야를 돌아다녀도 호랑이 그림자도 보이지 않으며 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는 피해를 방지하자는 목적 외에, 고가의 모피와 뼈를 얻기 위해 연이어 호랑이를 잡았기 때문이다. 뼈는 약재가 되고 모피와 거의 비슷한 가격대를 형성한다. 깔개로 쓰는 호랑이 모피는 엄청난 고가여서 경성에서는 한 장에 시가로 1,000엔에서 15,000엔이나 한다.
    지금은 호랑이가 자주 나오는 곳이 함경북도 백두산 자락의 무산과 회령 사이라 하지만, 그곳조차도 작년(1935년)에는 겨우 다섯 마리만 포획했다고 들었다. 이런 상태라면 가까운 장래에 조선의 호랑이는 멸종할 것이 확실하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2014), 『정호기』, 서울 : 에이도스, p.46-47

    출처 : 직썰(https://www.ziks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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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동연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우리나라의 호랑이를 대량으로 사냥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호랑이는 당시 일본에서도 사냥감으로 인기가 높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은 인구가 많아 식량난이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호랑이를 사냥해 식량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둘째, 일본은 당시 제국주의적인 국가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자원을 약탈하고 차지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호랑이도 그런 자원 중 하나였습니다.

    셋째,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침략한 것이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자원을 약탈하고 차지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일본은 우리나라의 호랑이를 대량으로 사냥해갔습니다. 그 결과,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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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이진광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호랑이가 일본에서는 복을 가져다 주고 또 모피의 수요와 가격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호랑이를 잡으면 주변 민가 백성들에게 지지도를 조금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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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15~1942년에 이르기까지 포살된 조선의 호랑이는 전부 141마리였다고 합니다. 표범의 경우는 그 수치가 훨씬 높아 모두 1,092마리가 사살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고 하지요. 이른바 공식기록인 셈입니다. 공식 기록이 이 정도면 실제는 500마리 이상, 표범은 2,000마리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전 세계 야생 호랑이 수가 7,000마리 정도이고, 한국 표범은 연해주 지역에 단 30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수치가 가히 어마어마함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결정적으로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마도 조선의 호랑이가 너무 부러웠던 점도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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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김태호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 시기에 일본은 다수의 자원과 식량 등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일본은 그 시기에 점령하고 있던 지역에서 많은 자원을 채취하였고, 그 중에서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많은 야생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동물들 중에는 호랑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호랑이는 일본에서는 동물원 등에서 관람용으로 이용되었으며, 그 외에도 가죽과 식용으로 이용되었습니다. 특히 일본의 군인들은 호랑이의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었으며, 호랑이의 육체도 군사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군사적인 지역확장과 병력 보강을 위해 동북아시아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에 따라 점령 지역 내의 자원과 산업 등을 수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이러한 자원을 수용하기 위해 지역 내 동물들도 활용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이 호랑이를 이용하는 것은 단순한 자원 확보나 식량 문제 해결 외에도, 일본의 역사와 문화, 종교 등의 영향도 있었습니다. 일본의 고대 신화와 전통적인 문화에서는 호랑이가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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